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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 - 열입곱 살 미치루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가타카와 요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큰 결심이나 목적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처럼 길고 먼 거리를 향해 한 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가 청소년 시절 직접 이 100km걷기 대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고 한다. 30, 40, 50, 60, 72, 86,... 각 체크포인트마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꽤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한마디로 걷기를 통해 느껴지는 감각들이 꽤 실감난다. 이 100km걷기라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생소한 얘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는 될 것이다.
여고생인 미치루는 부모님이 어린시절 이혼하여 엄마와 남동생 사토시와 지낸다. 엄마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입원한 이후 마치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듯이 변하고, 사토시는 위기에 처한 집안 사정은 나몰라라 철없이 지낸다. 막막한 때에 엄마의 동생인 외삼촌이 난데없이 100km 걷기 대회에 미치루를 참가하도록 신청해놓았다. 운동에 소질도 없고 끈기도 없다며 남동생이 놀리는 바람에 미치루는 어쩐지 욱하는 마음으로 걷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 '그래, 내가 100킬로미터를 완보하고 나면 어쩌면 엄마도 달라질지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을 받듯 이야기하며 한 걸음 두 걸음 발을 옮겼다. '내가 100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 이렇게 고통스럽게 밤을 세워 걷는 것으로 뭔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만 있다면......' "
미치루의 걷기는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저 나도 한다면 한다는 것을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점점 걸으면서, 힘듦을 느끼면서 걷는 의미도 달라졌다. 내가 뭔가 어려움을 이겨내면 내 주위 환경도 달라질지 몰라, 이런 일들도 좀 변하게 될지 몰라 하는 바람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게 해서 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이 단 하나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변한다면 내 주위 환경도, 풀기 어려운 일도 나로 인해 달라지게 된다. 내가 도전한 일이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한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뭔가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문득 왠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나카타 할아버지는 대회 중간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 전까지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었던 생판 남인 사람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생활 환경도 전혀 다른 할아버지와 이곳까지 서로 의지해 가며 함께 걸어오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이유는 이것인 것 같다. 나와 접점이 없던 남과 만나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런 만남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만남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더라도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과 세상은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나라에서, 옆 동네에서, 이웃집에서 누군가 아파하고 고통받는다면 그 고통이 곧 나에게도 전해질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는 내내 즐거웠던 추억부터 괴로웠던 기억까지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대로 죽는 것도 아닌데, 그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걷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자꾸 비장한 마음이 드는 거지?"
한참을 걷기만 한다면 그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바로 수없이 많은 생각일 것이다. 주인공 미치루도 그랬다. 안그래도 복잡한 가정사로 머리속이 어지러운데 힘에 부칠 때마다 안좋은 기억들, 묻어두었던 추억들이 이리저리 번져나간다. 막기에도, 떨쳐내기에도 어려운 생각들 틈에서 혼자 100km를 걷는다는 상황까지 겹쳐 자기 자신을 쓸쓸하게 여기는 미치루의 모습이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 '나는 나를 믿어'라는 말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감이 나에게는 없었다. 엄마는 늘 그것을 신조로 살아왔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래, 지금이 바로 그때다!"
주인공 미치루가 30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 한번도 아니고 삶의 자잘한 순간들마다 고루해지는 자신을 환기시킬 계기가 크고 작게 있어야 한다. 이 100km걷기도 그런 변화를 줄 수 있는 하나의 체험이 될 것이고, 이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독자들도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달라지고 싶었지만 달라질 계기를 잡지 못했을 때, 달라질 타이밍을 알 수 없을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다른 책은 미국청년이 쓴 것으로 미국의 50개 주를 돌며 50가지의 직업체험을 해 낸 경험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그도 현실이 주는 시련에 괴로워하던 때에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으로 그런 도전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인 미치루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도전을 이뤄낸 점이 비슷하다.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청소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감화를 일으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