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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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라니 아, 드디어 이 비서울인이 서울의 맛을 제대로 보겠구나 싶어 기대됐다. 어디 서울사람들만 알고 즐기는 서울의 멋을 좀 훔쳐내볼까 싶었다. 서울사람은 아니어도 어쩔 수 없이 서울을 오가는 입장에서도 모든 계절에 서울이 있었다. 봄의 한강, 여름의 남산, 가을의 광화문, 겨울의 명동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서울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늘 가던 익숙한 곳만 알고 있는 것 같아 놓치고 있는 서울이 있는 것은 아닌지 더 알아보고 싶었다. 기왕이면 풍류를 아는 소설가의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동대문의 조지아 식당, 홍대의 콜롬비아 식당은 나중에 나도 꼭 찾아가봐야지 따로 적어두었다. 맛에서는 사실 '서울'이라는 특수성을 잘 실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부 멋과 3부 흥에서도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솔직히 가장 설레이는 마음으로 침을 흘리며 읽었던 것은 1부 맛의 내용이긴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멋과 흥에서 좀 더 서울을 느낄 수 있었달까. 개인적으로 서울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어서일까, 그 안에서 걷고 움직이는 동안에야 비로소 서울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 면이 있었다. 

 1부 맛의 내용 중 재밌는 점 하나는 "매운맛에 대한 애호는 한국인의 유전자에 얼마나 깊숙이 배어 있는 것일까? 60"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어지는 '굴(70)' 에피소드와 함께 한국인에게는 매운맛 뿐 아니라 나물과 제철음식이 발현되는 때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패스트푸드나 치킨, 피자, 마라 같은 외국계 음식을 좋아하고 자주 먹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한식을 찾게 되는 때가 온다. 속이 편하고, 든든하고. 전에는 그 맛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왜 찾게 되는지 알게 되는 그런 때가, 시기만 조금 다를 뿐 결국은 발현되고 마는 것이다. 

 " 나무와 돌과 바다와 산과 새, 그리고 달. 인간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몇 가지의 응답이 거기에 있었다. 질곡의 현대사를 거쳐오며 더없이 열렬한 응답을 건네준 그들 또한 내게 질문을 건네는 듯했다. 무엇을 바라보고 벗하며 빚어내고 있느냐고. 119"

 서교동에서 열리는 농부시장(121)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꽃망울이 진 매화 가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서울은 항상 어딜가나 사람이 많지만 이렇게 꽃을 즐길 수 있는 계절에 한강이나 꽃이 피는 명소로 알려진 곳들은 특히나 더 붐비는 장소가 된다. 꽃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경하러 온건지 불평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렇게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도 모두가 어쩐지 들떠있는 그 분위기가 좋을때도 있다. 보통의 서울 안에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징글징글하게 여길 때가 더 많은데, 봄과 꽃이 사람들의 얼굴을 웃게 만드는 그 부드러운 분위기가 있다. 그 느낌을 맛보기 위해 다시 봄이 오면 또 돗자리를 하나 둘러메고 한강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잡으며, 다소 비싼 꼬치구이 같은 것을 기꺼이 한입 베어물고.

 "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점점 더 촘촘해지는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이 내려본 적 있는 역이 고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내려보지 않은 역에 내리는 일은 마치 커다란 모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222"

 서울 토박이(262)가 아니어서일까? 천천히 헤아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역들을 알고 있었다. 책에서 '대모험'을 하는 동안 16킬로미터를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 동대문에서 광화문과 명동 일대만 잠깐 돌아다녀도 열개의 역 정도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청계천을 따라 '조금' 걷기만해도 만보는 우습게 채우게 된다. 이렇게 서울은 넓고도 좁아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느라 시작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닿아 가게 된 곳들도 많고, 여기서 일하고 저기서 놀며 곳곳을 누비며 시간을 보내왔다는 증거마냥 꽤나 촘촘히 역들을 다녔다. 그 안에서 충분히 모든 공간을 즐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어보니 제법 서울 방문자다운 행보를 갖췄구나 싶다. 하지만 포트럭파티를 겸한 신년회(260)를 할 수 있는 차 모임을 가진 사람의 풍류에는 여지없이 부러움이 인다.

 서울을 더 알고싶다는 외부의 시선에서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내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있었나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몰랐던 곳, 특별한 곳을 찾으면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서울 풍류'를 통해 새로움을 발굴하는 것보다 아는 것을 더 잘 즐기는 방향을 잡게 된 것이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 앞으로 다가올 계절 안의 서울을 더 기다려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일상적인 생활인의 익숙함으로 서울을 보는 것 같아 즐기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를,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기는 것"이라는 이다 작가님의 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좋구나, 다시 이 도시를 잘 감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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