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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과 의사의 생존 가이드
조애나 치크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6년 8월
평점 :
" 내가 쓰레기 같아?
근데, 가끔 좀 쓰레기처럼 굴면 안 되는 거야?
그러게, 쓰레기가 될 수도 있지.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 184"
영화 <더 드라마>에서 결혼을 앞둔 커플이 친구들과 저녁을 즐기다 자기 인생 최악의 비밀을 하나씩 밝히기로 한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주고 거짓말을 한 과거의 잘못을 하나씩 고백하는 그들 사이에선 약간의 경멸, 비밀스러운 눈짓과 웃음이 오간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조금 더 은밀하고 얄팍한 유대가 한겹 더 쌓인다. 안 그런 사람이 있을까,하는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평범해보이는 선량한 이웃의 모습을 한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쓰레기같은 비밀이 하나씩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 쓰레기가 되며 산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지만 그래도 가끔은 쓰레기가 되고 만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 순간을,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자책에 빠지곤 하는 우리에게 '정신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은 쓰레기가 될 수도 있지, 해버린다. 그리고 가끔 당신이 쓰레기가 되는 이유는 당신이 분리수거도 안되는 쓰레기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불운하게도 쓰레기통 같은 세상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풀어놓은 비밀이 관계를 망치는 방아쇠가 되지만,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중에도 당신이 하려고 했던 그 나쁜 행동이 반드시 당신이 사이코패스라는 의미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빈번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접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 그것을 자신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어린 시절엔 더욱. 그러니 자신에게도 그런 비밀이 있다해도, 쓰레기통 속의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해도 너무 자책하지 않기로 하자.
사실 나 역시 책의 목차를 보자마자 5장부터 읽었다. 5장의 제목은 <인간쓰레기가 되지 않는 법>이다. 비록 책이 인간쓰레기가 되지 않는 확실하고 명료한 방법을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 법을 말해준 것에 가깝지만 그래서 더 좋다. 지금은 그래 뭐 쓰레기면 어때, 하거나 쓰레기가 아니라 쓰레기통 구역을 잠깐 지나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야 생각하기로 해본다.
" 사는 건 힘든 일이다. 부처가 깨닫고 가르친 고귀한 진리의 첫 번째가 인생은 고통이라는 것이고, 프로이트의 가장 큰 열망은 환자 개개인의 절망을 공통의 불행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류의 진화가 행복하거나 평온한 삶이 아닌 생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18"
다행히 너무나 평범하고 나약한 우리만이 아니라 대단해보이는 사람들마저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공표해놓았다는 것이다. 나만 힘들거나 특별히 더 나쁜 선택만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은 모두에게 속해있다. 그러니 때로 나쁘게도, 약하게도, 흔들리며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SNS를 보면 다른 삶들의 하이라이트만 모아놓은 것임을 알고도 비교하게 되곤 하는데, 인류의 모든 걸음은 비하인드를 통해 추진력을 얻었음에 다시 위로를 받게 된다.
"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불안과 우울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건, 생각을 중시하는 게 당연시되는 환경에서는 괴로움이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강한 감정 경보인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분노, 슬픔, 저조한 기분을 없어져야 할 감정으로 여기며 스스로 자기 몸에 두 번째 화살을 쏜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지 자꾸만 곱씹고, 기분이 나아지는 게 정상이라고 가정하고, 혹시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이런 나쁜 기분의 원인은 아닌지 찾으려고 하고, 이렇게 안 좋은 기분으로 영원히 살면 어쩌나 294"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여기서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가 반복해서 두번째 화살(237)*을 자기자신에게 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번째 화살은 불교 경전에서 전해지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나쁜 사건은 단 한 번 일어났을 뿐인데 우리는 그 사건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그 때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어간다.
세상은/상대는 한 번 화살을 쐈을 뿐인데 그것에 얽매여있으면 스스로 자신에게 또 다른 화살을 꼽는 것과 다름없다. 이 불필요한 감정에 부림 당하지 않고 멈추고자 하는 것이 두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와 싸워 이기거나 회피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끌려다니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일이 잘 안풀리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날 때 심지어 아플 때도 반사적으로 자기자신을 살핀다.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뭐가 문제였을까 자신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나 때문일까, 나는 왜 이럴까 같은 자책과 점검, 반성을 하려한다. 이 두번째 화살을 자신에게 겨누기 전, 타인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어떻게 대해줄 것인지 생각해본다(209).
타인이 실패를 겪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탓하던 생각을 그대로 할 수 있을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속으로 생각할지언정 차마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게 보이는 위로와 친절을 같은 상황에 처한 자신에게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가장 잘 대해주고 아껴줘야 할 자기 자신에게 남보다 못한 대접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하나 우리가 머리속에 잘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완벽함에 대한 추구, 영원한 지속은 없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통해 도리어 위안을 얻게 되었다 234"고 했는데, 우리-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미 그 깨달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다. 이미 지드래곤이 말하지 않았던가,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케이팝이 오늘도 1승을 했다.
더불어 영원하지 않음은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단념시킬뿐 아니라, 우울과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는 때마저도 일시적임을 말한다. "우울하고 불안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모두 기분이나 감정을 일시적으로 나타낼 뿐이다. 338" 그러니 그늘 아래에 있을 때 잠시 자리를 피하라고 조언한다. 그늘에서 벗어나고 보면 가득했던 구름들이 걷히는 순간이 온다.
세상이 혼란하고 험난해질 수록, 나와 다른 사람을 나누고 서로를 탓하고 싶어질수록 연민과 공감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선함과 악함을 구분짓고 싶고 나와 남을 나누고 싶겠지만, 우리는 어느 한 가지 역할만 하며 사는 것이 아니고(146) 우리의 행동은 서로 연결(221)되어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더욱 위로가 되는 것은 남과 나를 구분짓고 나누는 것보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연민에서 비롯된 낯선 사람과 나눈 작은 호의 같은 것들이다.
" 이런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고 괴로워하는 건 어디가 망가진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놓이면 괴로워하도록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생존을 도와주는 경보장치가 작동한 결과다. 세상은 붕괴 직전이고, 모두의 경보가 크고 또렷하게 울려야 시스템이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17"
'정신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을 읽는 것은 삶이 레드레드 신호를 주는 딱 그만큼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거기서 벗어나야 하거나 괴로움에 부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삶은 원래 힘든 것이다. 가끔 힘들고, 남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게 부담스러운 정신나간 세상에서 우리는 때로 아프다. 다만 어떤 가치를 선택하고 따르며 사느냐(378)를 스스로 정해 행동하며 살 수 있다. 단순히 세상 탓을 하고 개인에게 위로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의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