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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평점 :
"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도 있었어. 이제 저마다의 인생이 시작된 거니까. 그 친구도 나도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104"
어른이 되고 난 뒤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이 참 힘들구나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렸을 때는 함께 놀 상대가 매일 주변에 있었고, 좀 더 자라서는 학교에 가면 항상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잘 몰랐다. 요즘은 학급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친구 사귀는 일이 조금 더 압박감이 있겠지만, 예전에는 많은 인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무리가 생기고 어느정도 여유롭게 무리를 오가며 지내는 일이 보통이었다. 그때는 번화가만 나가도 길을 걷다 금방 인사를 나눌 친구를 마주치기도 하고, 막 성인이 되어선 어울릴 사람도 챙길 친구도 많아 바쁘기도 했었는데, 정신없이 눈 앞을 살아가다보니 곁에서 같이 걷고 있었던 것만 같던 친구들이 각자의 길로 걸어나가버린 뒤였다. 어느새 누군가와 함께 노는 것보다 혼자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에 더 익숙해졌구나, 문득 스스로가 어른이 되긴 했구나 새삼스러웠다.
이런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친구는 쓸모없다' 제목을 보고, "좋아하고 미워하면서도 자꾸 연락하게 되는 사람들"이란 부제를 보고,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친구 기근'과 연관된 내용이겠거니 어림 짐작하며 봤는데, 의외로 시작은 최초의 놀이 친구에 대한 기억부터였다. 어린시절 열심히도 손윗동기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났다. 하필이면 자랐던 동네에 손윗동기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댓명이 넘게 있었는데 나와 나이가 같은 아이는 없었다. 혹은 그보다 한두살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라 나는 혼자 놀거나 이들이 노는 자리에 금붕어 똥처럼 졸졸 따라붙어 깍두기 노릇을 했다.
"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서 온종일 오빠를 쫓아다녔어.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25"
우리는 사이가 좋았던터라 집에서 둘이 같이 놀 때도 어지간히 잘 맞고 재밌기는 했지만, 손윗동기 입장에선 제 또래랑 놀러 다닐 나이가 되었을때 늘 봐줘야하는 혹을 하나 달고 다니는 일이 제법 성가셨을 것이다. 한번은 그날만은 나를 떼어놓고 싶었는지 몰래 나가려다 들켜서 따라가겠다며 떼를 쓰는 나를 이불에 돌돌 말아서 방에 넣어두고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뒤로 몇 해 지나지않아 각자의 친구와 놀게 되면서 그 시절은 끝나버렸지만, 어른이 된 이제는 함께 쌓아온 추억, 취향이 맞는 서로 의지하는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다. -고 하고 싶지만, 아직도 나만 더 같이 놀고 싶어한다. 동생들은 공감할텐데, 아직도 지루해지지가 않는다.
" 우정이라는 건 중학생쯤 되어 자아가 생기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려 할 때가 되어서야, 절실히 원하게 되는 것 같아. 부모가 아니라 타인이 필요해지는 시기인 거지. 그렇게 친구를 원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어른이 되는 거야. 53"
얼레벌레 주변의 놀이친구와 어울리게 되는 어린시절이 지나고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슬슬 처음 기대했던 재밌는 내용, 인간관계라 할 만한 것이 시작된다. 이렇게 상세하게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당시 어떤 생각을 했고, 또 누구와 어울렸는지 적혀있어서 저자에게 친구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되는 것이, 나 역시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끊는데 신경을 쓰게 된 시기가 중학생 무렵부터 였던 듯 하다. 같이 어울릴 무리와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시기의 증명서같은 것이라 이를 원만히 만들어놓지 않으면, 다른 무리와도 쉽게 어우러지지 않고 혼자 튀어나온 것처럼 겉돌게 되는 일도 생긴다는 걸 알게 됐었다.
좀 다르게 느껴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에 대한 인상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로 상대를 알아갈 수 있으나 사귐에 있어 계산이 적고, 감수성이 민감한 시절이라 이 무렵 마음을 터놓고 사귀게 되는 친구는 평생 가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은 그런 인식이 없는 것인지 개인의 경험이 달랐던 것인지 궁금했다.
"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해 쓰기로 한 책인데, 왜 어른이 되고 난 뒤의 친구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하는지 알아? 우정은 지속된다고 믿기 때문이야. 163"
회고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에세이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대부분이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담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글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묘한 리듬감과 친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이 둘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친구가 된 관계로, 일로 만나게 되었다가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알고 지내면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194) 한다. 읽으면서 부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들도 자신들과 같은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으로 봐서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친구를 새로 사귀는 일은 모두 쉽지 않게 여기는구나 싶었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짙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종종 있었는데 "전학생은 당연히 괴롭힘을 당혔어. (61)"라던 어린시절이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대로 된 회사에 들어가기는 어렵겠구나."(119) 같은 이야기가 나왔던 것, "나는 평생 한 번도 치한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 애가 부럽더라."(130) '부럽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 어떤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지 상황에 맞는 표현이 아닌 것 같아 때로 어색했다. 더불어 전쟁에 관한 이야기(48)가 나올 때는 자신도 모르게 예민한 눈으로 몇번이나 살펴서 읽게 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알고보면 친구를 너무나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라 '쓸모를 염두에 두고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책이라고 하지만 성인 독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면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기와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보다 조금 지나서 벗어나고 난 뒤에 보면 더 자세히 보이는 것이 있는 것처럼, '친구 관계'에 대해서도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시기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알 것 같아서다. 책을 읽고 난 뒤인 지금도 새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여전히 어렵겠다고 생각하지만, 곁에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홋카이도의 라일락과 우리 집에 핀 민들레가 이어져 있(201)'는 것처럼, 언제든 가볍게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래도 별로인 면이 있다는 걸 서로 알고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더 안심되지 않아?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