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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Life is short, Art is long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26)'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이 경구를 아시나요? 우리가 예술이라 이해했던 이 문구의 Art는 사실 전체적인 문맥을 파악해서 해석하면, 예술이 아닌 의술을 뜻한다고 한다. 예술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문구가 아니라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로 시작하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며 '비주얼 의과학사'는 시작된다.
'비주얼 의과학사' 라는 제목을 몇번이나 되새겨도 매번 비주얼의 과학사라고 읽게 되는 함정에 빠졌다. 의과학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익숙하지 않아도 괜찮은걸까. 의과학의 역사를 비주얼적으로 풀어낸다는 시도는 어떻게 하게 되었을까? 해부학자인 저자는 클림트의 <키스>를 감상하다 그림 속 무늬들이 정자와 난자 그리고 수정의 순간을 암시한 그림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한다. 가장 자리가 진한 도넛 모양을 한 적혈구의 전형적인 형태를 띈 무늬(101)를 통해, 당시 지식인 세계에 널리 알려진 의과학의 발전- 현미경을 통한 혈액의 구성 요소, 순환에 대한 발견이 작품에도 영향을 끼쳐 흔적을 남겼다고 본 것이다.
신기한 마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설명을 읽고서도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그림 속 무늬들은 여전히 꽃이나 화려한 패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예술작품이 그 시대를 품고 있다는 점, 의과학이 가시적인 자료들을 통해 발전/기록 되어 왔다는 점엔 공감할 수 있었다. 책에 담긴 그림, 도표, 사진 등의 기록들을 통해 의학이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해나갔는지 파악해나간 저자의 시도는 자연스럽게 시각적 자료가 되어 의과학의 역사를 살펴보기 시작하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과거의 인물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의과학 지식의 층까지 멀쩡히 정답으로 가는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라,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시도를 했을까 싶은 일들도 있다. 가장 엉뚱한 시도는 체중계 의자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먹은 것의 무게와 배설한 것의 무게를 재고 실제 증감한 체중 사이의 손실을 발견한 17세기 초의 의사 산토리오 산토리오(65)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의 계산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저울에 감자칩 하나를 올리고 그 무게가 여전히 0에서 변동이 없음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섭취하면 한봉지를 다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독특한 형태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표지의 그림(97)은 라에네크가 만들어낸 최초의 청진기였다. 지금의 것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더 잘 듣기위한 도구를 이용해 심장과 폐에서는 일정한 규칙음이 있고, 특정 소리가 특정 병리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낸 성취의 기록이다. 이밖에도 이걸 다 채울 수 있을까와 이걸 다 어디에 쓸 것인지 감도 오지 않는 중세 요검병(111) 크기에 놀라게 되기도 하고, 인슐린 치료 전후 환자의 변화(331)를 통해 현재와과 과거의 건강함과 보기 좋은 상태에 대한 관점 변화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비주얼 의과학사'의 시도는 생소하고 독특하게 여겨지면서도 어찌보면 당연하게 수긍된다. 우리가 저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41)를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스케치인 <인체 비례도> 역시 그림으로 생물학의 영역을 표현해 낸 작품인 것이다. 그 외에도 다빈치가 남긴 인체 해부 스케치들은 예술가적 관점에서 시작되었으나 생물학과 해부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공헌을 했다. 그러니 이 두 분야의 연결을 낯설다고 착각하는 것일뿐, 오랫동안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보아왔던 예술이자 기록물, 발전의 과정인 것이다.
클림트의 <키스>를 통해 그 사실을 깨닫게 된 저자는 본격적으로 비주얼적 자료에 담긴 시대의 기록, 의학 발전의 흔적을 찾는다. '비주얼 의과학사'에는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라는 책의 권두화(44)가 실려있다. 과학과 예술이 만난 르네상스 해부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으로, 16세기 해부학자 베살리우스가 예술가인 제자 얀 반 칼카르와 협업해 완성한 것이다. 한 시대 안에서 모든 분야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 그럼으로써 더 나아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자극이 된다는 것이 잘 담긴 인상적인 예시였다.
'비주얼 의과학사'는 저자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견해 낸 결정적인 의학사적 순간들이 '봄/보는 것'으로서 어떻게 정립, 반박, 증명되어 왔는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앞으로도 이어질 의학사의 여정을 함께 가도록 이끈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기대 이상으로 유용한 내용으로 채워져있어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부담은 덜고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