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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피해자 - 스토킹과 사법 정의에 대한 어느 기자의 기록
곽아람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5월
평점 :
" 한국에서 피해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기 위해서, 이 사회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범죄 피해가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해서, 궁극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27"
저자를 어떻게 먼저 알리는 것이 더 좋을까 잠깐 머뭇거렸다. 기자이자 스토킹 범죄 피해자라고 하고 싶었다. 저자에 대해 소개할 때 피해자가 다른 무엇보다 앞선 수식이 되게 하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가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어 보았기에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 위치에 서게 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 부당하고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음을 읽을수록 절감하게 되면서 '피해자 되기'에 질려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모든 방향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는 당연하고,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회사,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자의 위치에 서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범죄 피해자 곽아람'을 '피해자 위치에 있어야 하는 피해자'로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상 재해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며 법적 지원을 거부하려 들고, 경찰은 피해의 경중을 재듯이 따지며 수사를 몰아갔다. 변호사는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본인의 경력에 더 집중하기 위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검사는 사건의 진행 상황조차 피해자와 공유하려 들지 않았다. 저자가 구형량을 알기 위해 검사실에 전화했던 일이 '사회적 예의'에 어긋나는 일(214)로 기자 갑질이라는 뒷말이 나올 정도다. 판사는 고압적이고 거만한 시선으로 법을 휘둘렀다. 주변인들조차 피해자의 대응을 두고 괜히 일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으니 암담하다. 판사 뒤에는 님, 가해자에게는 피고 인, 피해자는 존칭과 사람의 표현이 다 떨어지고 '놈 자' 만 남는다는 표현에 웃음이 쓰게 나왔다.
" 충격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른다. 갑자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갑자기 범죄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경황이 없는지. 고소장 양식을 인터넷으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다. 아니, 고소장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에 판사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를 간 큰 인물은 없다고 여겨서, 생각이 아예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96"
피해자는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소송에 있어서는 국가와 피고인에게 당사자의 자리를 빼앗긴다. 피해자는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자료와 진행 상황에도 좀처럼 접근할 수 없이 배제되기 일쑤였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가 피해자를 사건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기자'라는 수식이 있었고, 이는 한국사회에서 마법의 문구로 여겨지는 "취재가 시작되자(268)"와 결합되자마자 다른 세상으로의 급격한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자원이 많은 피해자'일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으며 느껴왔던 모든 답답함과 분노가 이 순간 함께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 피해자로서의 볼일을 마친 후 기자로서의 업무를 시작했다. 홍보실은 바로 전화 연결이 되었다. 관등성명을 대는 경찰관에게 피해자 지위를 획득한 지난 5년간 검.경.법원에 전화를 걸어 갖은 박대를 당하면서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일궈온 나의 정체성을 관통하는 단 한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조선일보 곽아람 기자인데요." 오후엔 전혀 다른 세상을 겪었다. 취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268"
피해자는 수치심(84)을 느껴야하고, 우울하고 무섭고 불안해해야 한다. 법정에서는 불쌍함을 어필해 최대한 울고불고 '피해자다움'을 극대화하라(350)는 조언을 듣는다. 피해자답게 가해자보다 낮고 가엾고 약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당신이 가해자보다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죗값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416)는 말을 조언처럼 듣는 입장의 저자도 분노와 슬픔, 고통에 시달리다 '죽음을 전시(382)'하는 것으로 절망과 무력을 세상에 전달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정도로 힘들다. 그러니 법에 대해 더 무지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조차 부담이 되는, 어디에 대고 이런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피해자가 되어버리면 어떻겠는가. 그동안 뉴스로 접하게 되는 흉흉한 사건들을 보면서 막연히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기자 곽아람이 내놓은 길고 답답한 싸움이 고통스럽게 이어지는 기록을 보면서 '사건'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피해와 압박이 더해지는 현실적 공포를 깨닫게 되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 씨(208)), 스토킹, 교제 살인, 일베 같은 사이트에 딥페이크 등 음란물을 올린 성범죄 등 각종 범죄 행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사건을 접하게 될 때마다 제대로 된 대처와 보호, 처분도 없이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적인 조치들에 분노를 하곤 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법이 너무나 느리고 보수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여 범죄자의 악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거에 만들어놓은 피해자성을 기준으로 함부로 말을 얹어 평가하고, 사건을 흥미거리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았나 되짚어 보게 되었다. [탁월한 피해자]를 읽는 동안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깨닫고 깊이 공감하며 같이 분노할 수 있었다. 처음엔 저자의 수식에서 뒤로 미뤄두고 싶었지만, 함께 응원할 수 있도록 버티고 싸워준 '피해자 곽아람'에게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