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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파랑의 궤도
네이선 밸링루드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5월
평점 :
우리는 아마, 언젠가 지구를 뒤로한 채 새로운 별로 떠나야만 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운명적인 예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지구와 비슷한 색을 가진 다른 별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는 새로운 지구를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해보곤 한다. 마치 지구에선 자신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나면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지구 또한 피해갈 수 없다는 듯이, 너와 같은 별을 찾게 되면 낡은 지구는 버리고 새로운 지구로 떠나갈 것을 꿈꾼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는 바로 그 어둡고 위태로운 희망을 닮은 이야기다.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에서 새로운 지구로 선택된 무대는 화성이다. 애너벨의 가족은 애너벨이 다섯 살 때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아직 화성과 지구간의 이동이 가능하던 때 엄마는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혼자 지구로 돌아간다. 엄마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않아 행성 간의 신호가 끊기고, 이 '침묵' 이 후 지구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주선의 왕복도 끊긴다. 화성에 이주해 온 사람들의 삶은 점점 황폐해지고, 아빠와 애너벨은 오래된 설거지 용 엔진 왓슨과 함께 '마더 어스 다이너'에서 엄마가 남겨둔 음성녹음에 의지하며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고 애너벨의 세계도 깨어진다.
사람들은 기적의 광물이라 여겨지는 스트레인지를 채굴해 지구로 보내기 위해 화성으로 이주해왔다. 스트레인지를 가공해 얻어지는 엔진 첨가물은 엔진에 인격/지능을 부여(50)한다. 스트레인지는 엔진 뿐 아니라 채굴을 하던 디그타운의 노동자들의 성향과 행동 마저 냉담하고 산만하며 거칠게 변화시켰는데, 스트레인지에 노출돼 오염된 사람들의 눈은 초록빛이 되었다. 화성 이주민들은 '침묵' 속에서 화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과 고갈되는 자원, 스트레인지와 디그타운의 사람들, 사막의 광신도 집단인 나방족의 다름과 불가해함을 두려워한다.
"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공포와 외로움을, 우리가 무서웠기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들을 말이다. 10"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으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일들이 결국 공포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다른 사고와 입장을 가진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단절은 공포와 외로움을 낳는다. 다름에 대한 구분과 배척은 결국 혐오와 폭력으로 번진다. 뉴 갤버스턴의 사람들이 초록빛 눈을 가진 디그타운 주민들과 나방족에게 품는 불안과 불편은 연령, 성별, 소득, 교육, 인종, 국적 등 우리 사회에서 타인과 자신을 구분지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경쟁과 갈등을 품고 있는 것과 닮아있다.
" 나는 조가 샐리와 맞서 싸워주기를 기다렸다. 제발 그렇게 해주기를 속으로 빌었다. 어른이 나를 구해주기를 바라며 다시금 소심해졌다. 204"
깨어져 새롭게 깨어난 세계 속의 애너벨은 혼란과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마더 어스 다이너'는 침략됐고 아빠는 공격 당했으며 엄마의 음성 녹음이 담긴 소중한 실린더는 빼앗긴다. 하지만 그동안 애너벨을 둘러싸고 있던 세상은 애너벨에게 일어난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들에 정당한 분노와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 어린 소녀에 불과한 애너벨에게 어른들은 이기심과 냉정함을 보여준다. 세상의 민낯을 보게 된 애너벨은 그에게 남은 친구 왓슨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그 안으로 뛰어든다.
우울 속에 침잠하는 아빠를 다시 깨우기 위해, 아빠마저 잃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너벨은 강도에게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으려 사막으로 나선다.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은 애너벨은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대신 욕하고 저항한다. 때때로 애너벨이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예민하다고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과함조차 위악과 허세로 가시를 세워 자신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숨기려했음이 느껴지곤 했다.
" 내 발로 소외를 택했으면서도 비이성적으로 속이 상했다. 난 저들이 누구인지 알기에, 게다가 우리 아빠와 내게 저지른 일이 있기에 증오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저들이 날 자기네 사이로 끌고 가서 저녁을 먹여주길 바랐다. 내가 바라보는 저 어둠 속에는 사실 아무런 공포도 없다고, 그 어떤 수수께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로지 사랑과 온기와 단단하고 누구나 알만한 땅이 있을 뿐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바랐다. 256"
자신과 아빠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사막으로 뛰어든 애너벨은 냉정한 세상와 사람들의 날선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두렵고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애너벨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주어졌던 어른의 보호가 이어지길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한 번 깨어진 알의 껍질 속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길 선택한 애너벨은 오기와 저항으로 부딪혀 버텨 나간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까. 갓 부화한 작은 생명은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던 세상 안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 껍질을 깨고 나오려 몸부림친다. 껍질 밖 세상에서 지켜보는 사람에겐 작은 균열일 뿐일 이 몸부림은 어린 생명에겐 더할 나위없이 최선을 다하는 저항이다. 애너벨 안의 약한 마음도 엇나가는 듯 보이는 거친 태도도 어느새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응원하게 만든다.
'침묵' 속에 놓여져 갈수록 궁핍해지는 화성의 환경, 스트레인지의 영향 아래 공격적이고 섬뜩하게 변해가진 엔진과 사람들에게서 열네 살 소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은 단지 엄마의 목소리가 녹음된 실린더, 오래된 설거지용 주방 엔진 왓슨, 그리고 아빠였다. 단지 엄마를 그리워하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였던 애너벨은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소녀시절과 이별한다. 그 과정에서 이기적이고 냉정한 어른들의 민낯과 마주하고 거칠고 혹독한 세상의 현실에 눈을 뜬다.
이제 막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애너벨은 과연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불가능한 파랑의 궤도]를 읽는 동안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 위에서 우리 삶과 닮은 공통점을 찾아 덧씌우기도 하고, 길을 떠나야만/떠남으로써 얻게 되는 성장을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애너벨과 함께 헤매고 싸우며 읽게 되는 치열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애너벨과 왓슨은 빼앗긴 실린더를 되찾아 아빠를 구해낼 수 있을까. 스트레인지의 영향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주의 '침묵'은 깨어질 수 있을까. 애너벨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자.
" "야, 벨.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니까 기분 좋냐?"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