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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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함도 없고 뭐든지 깊이라고는 없는 탓에 좋아하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할만한 분야가 없다. 하지만 영화와 음식, 이 두 가지는 나름 긴 시간동안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왔다. 둘 다 여가로 즐기기에 접근성도 좋고 순수히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라 영화를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는 취미가 주는 낮은 문턱, 보편성도 좋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영화 속 음식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한 단계 더 상향시켜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영화도 음식도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름 위의 만찬]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반가운 마음과 즐거운 기대를 품고 만찬을 즐겨보았다.
미리 덧붙이자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의 감자튀김(89)이 첨가물 때문에 채식주의자들이 피해야하는 메뉴라는 것이었다. 감자튀김 정도는 채식의 범위에 거뜬히 들어갈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아니었다니, 나중에 감자튀김을 사게되면 밀, 계란, 우유 등 첨가주의 문구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우리가 만나보았던 영화 속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음식을 떠올려보자. 요리와 음식이 주제가 되는 유명한 영화들도 있고, 한 장면 나왔을 뿐인데도 인상깊게 남는 음식도 있을 것이다. 가장 처음 나의 구미를 당긴 것은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환상의 음식이었다. 바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음식들이다. 실제 음식들 못지 않게 가장 먹고 싶은, 대표적인 꼽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들은 실제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맛일까 '상상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더 맛있을 것 같고 궁금해진다. 재밌게도 이 상상 때문에 애니메이션 속의 음식을 실제로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여백이 남아 동경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진짜라면 바로 식품위생과에 신고하게 될 쥐가 만드는 <라따뚜이>나, 그야말로 환상 속의 음식인 <월레스와 그로밋>의 달 치즈, 흐린 날씨에 때때로 미트볼이 내리는 세상 말세인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강아지들의 데이트 맛집인 <레이디와 트램프>의 미트볼 스파게티, 하울 정식으로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음식들은 실제로 먹는 것보다 애니메이션 안에서 더 맛있어보인다는 치명적인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때문에 이들 영화를 비교적 어린 시절에 보게 된 영화팬들에게 이 음식들은 '단추 스프'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노스텔지어의 접시로 새겨진다. 비슷하게 구현해보아도 영화를 보며 '상상'했던 그 맛과 추억은 따라잡을 수 없을테니. 

음식, 요리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진심과 집요함을 오간다. 하울 정식의 달걀후라이(64)를 이야기하다 달걀깨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디 아워스>로 넘어가는 과정은 재밌지만 슬쩍 질린다. 늘 싱크대 모서리에 달걀을 깨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평평한 곳에서 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니 혼나는 것 같아 위축되면서 웃기다. 서양 식문화에서 달걀이 얼마나 중요한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는 방법 따위를 진지하게 강론하는 내용(246)을 읽다가 문득 최근에 본 <위 리브 인 타임(2026)>의 '달걀을 깨는 최고의 방법'이 떠올랐다. 한 접시에 달걀을 깨서 바로 담았다가 껍질이 섞이지 않은걸 확인하고 다른 한 그릇에 모아담는 그릇 두개 쓰기가 나온다. 그릇 하나만 사용하면 껍질이 들어갔을때 골라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달걀을 어떻게 깨는가 논하는 사소함이 가족의 유대를, 한 문화의 식생활을 보여주고, 어떨 땐 다른 설명이 필요없는 감정도 담아낸다. 

좋게 말하면 먹는 것에 진심이고 달리 말하면 과몰입한 저자가 가장 불쾌한 감정을 크게 드러낸 것 중 하나가 <황해>에서 하정우의 먹방을 이야기하며 '돌연 닭다리 100개 먹기'는 스턴트일 뿐, 먹방이 아니다(21)고 단언하는 부분이었다. 먹방에 대한 추구미가 처절하리만큼 단호해 당황스러웠는데 즐길 수 없을 만큼 과하게 지나치게 먹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도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휴게소 커피(204)를 통해 관계의 불행까지 예감한 <화차>다. 휴게소 음식들 대부분이 비슷비슷하고 또 맛있다고 이름 난 곳들도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휴게소를 들리면 꼭 커피 한 잔은 사는 편이라 휴게소 커피가 '맛없음의 새로운 심연을 활짝 열(206)' 정도란 말인가 놀라웠다. 이것도 생각해보니 커피는 종종 맛의 영역을 넘어선 그 무언가로 기능하도록 분류되지 않았나 참작되는 구석이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들 때문에 저자가 얼마나 음식에 진심인지 느껴질 때면 질리면서 재밌다.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없었던 음식도 있다. 바로, 짜장면. 한국 영화에 단골처럼 나오는 음식이라 <기생충>을 통해 유행했던 '채끝짜파구리'나 <김씨 표류기<2009)>같은 영화를 다루며 나올 법 하다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등장하지 못했다. <피그>를 이야기할 때 트러플오일을 넣은 짜파게티를 스치듯 언급하지만 '짜장'의 존재감에 비하면 빈약한 등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짜장면하면 <주유소 습격 사건(1999)>이 떠오른다. 김수로 배우가 맡은 배역 철가방은 짜장면을 배달하러 주유소에 갔다가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영업 시간이 지났으니 주문을 자제해달라는 요구를 했을 뿐인데 주인공들에게 두들겨 맞게 된 철가방을 통해 배달 업종 종사자의 고충이 드러나고, 이를 복수해주기 위해 모이는 동네 철가방 연합들의 '낭만의 90년대'스러운 의리가 한데 뭉쳐 사건을 키우는 역할을 코믹하게 수행한다. 무엇보다 짜장면도 맛있게 먹는다. 

또 하나 없어서 아쉬웠던 음식은 <아수라> 속의 육개장(138)을 읽으며 떠올린 미지의 음식, 미지의 문화 캐서롤이었다. 전부터 외국영화를 볼 때 상을 당한 집에 이웃들이 찾아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캐서롤을 주는 장면이 묘하게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잔뜩 쌓인 캐서롤을 끔찍해하고, 때로는 아무렇게나 퍼먹다 슬픔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장면들에서 보이는 이 낯선 문화와 음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주와 조문객 사이의 주고 받는 입장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 동서양의 문화차이가 확연해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왜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내줄까, 하고 깊이 파고든 것처럼 왜 서양사람들은 캐서롤을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릴까도 함께 이야기해줬다면 이 오래된 궁금증을 풀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읽기 전에 과연 저자가 꼽은 영화 속 음식과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음식들이 얼마나 일치할지 궁금했다. 나라면 어떤 영화 속 음식들을 풀어내고 싶을까. <데몰리션맨(1993)> 주인공인 실베스타 스텔론이 2032년 냉동 감옥에서 깨어나 마주한 미래 세계의 하층민들이 쥐고기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2020년쯤엔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나올 것이라 기대했던 어린시절에 2030년쯤엔 쥐고기를 먹게 될지도 몰라 두려움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우리는 <설국열차(2013)> 속의 단백질 블록을 미래의 식량으로 그리고 있다. 원재료가 바퀴벌레라는 사실은 여전히 끔찍하지만 버거라는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것이란 20세기와 그마저도 단백질 블록이라는 대용품을 만들어내는 21세기의 감성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밖에도 <금옥만당(1995)>의 화려한 중식이나 <마틸다(1997)>의 달콤하고 진한 초콜릿 케익, <헬프(2011)>의 끔찍한 재료가 들어간 초콜릿 파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의 귀여운 하울 정식, <헬로우 고스트(2010)>의 눈물 젖은 미나리 김밥, <어벤저스(2012)>에서 영웅의 민낯을 보여주는 슈와마, <기생충(2019)>과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에서 상징적인 기능을 한 복숭아, <티파니에서의 아침을(1962)>을 더욱 시크하게 만들어준 커피와 크로와상, <사람과 고기(2025)>의 섪고 유쾌한 고기 한 상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꼽은 한 58개쯤 되는 음식 들 중에서 겹치는 것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61), 설국열차(114) 기생충(121)> 뿐이었다. 범위를 더 넓혔더라도 <올드보이>나 <라따뚜이> 정도만 더해졌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놓친 음식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특히나 최근의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수라는 진상하는 장면이 많았는데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스쳐보낸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음식이 단지 한 장면을 채우기 위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과 시대를 표현하는 은유와 상징으로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필름 위의 만찬]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읽는 동안 때로는 시시콜콜하고 때로는 집요했지만, 풍요롭고 즐거웠다. 영화, 음식, 책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맛있는 책 [필름 위의 만찬]을 오늘의 후식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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