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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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자마자 짐을 챙겨 며칠간 여행을 다녀왔다. 분명 짧은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돌아와보니 그 사이 성큼 봄이 와 있었다.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 곧 떨어져내리는 일만 남은 여린 분홍빛 꽃잎이 비처럼 날리는 것을 보며 내가 없이도 기어코 꽃이 피었구나 섭섭하기까지 했다. 그보다 먼저 온 산을 뒤덮을만큼 흐드러져 절경이었다던 진달래며 밤에 볼 때 유독 탐스럽고 하얀 목련이 피어나던 것을 다 반기지 않았으면서 며칠 사이에 놓쳐버린 것만 같은 봄을 괜히 아쉬워할때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만났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 이렇게 해박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그래도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항상 동경하듯 바라보게 된다. 어릴 때는 나무며 꽃들이 그리 궁금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초록의 이름이 궁금해지곤 했다. 이름을 아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해졌는지 잘 외워지지 않는 얼굴들에 스마트렌즈를 들이밀고 모야모*를 찾아보며 다음에 만나면 또 까먹을 이름을 몇번이고 되뇐다. 지난하긴 해도 싫어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중대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동안 자목련과 자주목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목련은 우리가 흔히 아는 하얀 꽃이고, 자주목련은 꽃잎 밖이 붉은색, 안쪽이 흰색, 자목련은 안과 밖이 모두 붉다고(16)한다. 그동안 그저 붉은빛이 있으면 모두 자목련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 충격은 아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같은 얄팍한 독자이자 식물구경꾼은 교과서를 펼쳐 시험범위를 공부하듯이 책을 읽게 되는데, 어설프게 알고 있다는 점은 때로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약점이 된다. 이를테면 모감주나무와 꽈리를 구분하지 못하게 될까봐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작년 대전의 어느 골목에서 빨갛게 물든 꽈리를 보고는 꽈리랑 비슷한데 이름이 뭘까 했던 전적이 있는터라 더욱 쫄았다. 물론 큐슈곤약처럼 생전 처음 보는 식물도 만나게 된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 식물들이 등장해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언뜻 할미꽃인가 싶은 '야고'나 나팔꽃인가 싶은 '플록스'같은 낯선 식물들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 낯선 식물들이 느슨해진 식물구경꾼의 기강을 잡긴 했지만, 소개되는 식물 대부분이 '다 한번씩 안면은 튼 초록이들이군' 싶은 친근한 식물들이다. 세세히 톺아보거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편이라 적당히 반갑게 적당히 귀동냥하듯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저자인 나무의사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인간이 멸종한다면 지구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58)"임을 밝혀 굉장히 솔직하다고 웃었는데, 이어지는 후박나무 껍질 도둑 사건(59)을 접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짜 후박나무 껍질을 벗겼는지 일본목련의 껍질을 벗겼는지 모를 일이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인간이 미안할 일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후박나무는 이 사건 말고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는데 울릉도 호박엿으로 잘못 알고 있는 그 엿의 진짜 재료와 이름이 후박나무의 껍질 진액으로 만든 후박엿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오인되다 못해 진짜 호박엿으로 변형되기까지 한 울릉도 호박엿과 과거의 울릉도 후박엿 중에 뭐가 더 맛있을까, 한번도 진짜 후박엿을 먹어본 적이 없는 듯해 후박나무 껍질 도둑이 벗겨간 그 껍질을 압수해서 어떻게 했을지 뒤늦게 궁금해졌다. 

책에서 소개된 많은 나무들 중에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 중 하나인 무궁화(89)가 있었다. 그때만해도 무궁화는 꽤 흔한 꽃이었는데 학교나 공원같은 곳 화단의 한 자리는 무궁화 밭이 꼭 차지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피었다지기를 오래도록 하던 그 꽃은 질 때 말려드는 독특한 꽃봉오리 뿐 아니라, 씨앗 마저도 보들한 털을 두른 독특한 모양이라 '우리나라 꽃'이라는 특수성이 아니고서도 인상적인 식물 중 하나였다. 요즘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 나갔을 때 히비스커스 친구들을 더 많이 마주쳐서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반대로 최근의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은 화살나무(182)다. 서울로 7017**를 걷다보면 커다란 화분에 독특한 줄기를 가진 나무가 심어진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뭘까 너무 궁금해서 찾아보니, 과연 생긴대로 이름이 화살나무였다. 하도 이름값을 하는 생김이라 그 뒤로 잊혀지지 않고 보는 족족 이름이 떠올라 마찬가지로 이게 뭘까 궁금해하는 주변인들에게 잘난 척 이름도 알려준 적이 몇번인 탓에 책에서 보니 반갑고 새로웠다. 

'숲으로 출근합니다'와 같이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들의 공통점은 읽을수록 겸손해지고 어딘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만 하는데도 마치 숲을 산책한듯한 효과를 함께 얻는 듯 하다. 아마 인자요산***이라 했으니 식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은 그와 닮아서 저절로 피톤치드가 나오는 산림욕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내 뇌가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르고. 책을 읽는 동안 삼색참죽나무 새순의 고아함 36, 포엽을 마치 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산딸나무의 영리함 44, 노루오줌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몽글히 피어난 청순함 82, 태산목 꽃의 거대함 109, 큐슈곤약 꽃과 열매의 기이하고도 개성적인 독특함 133, 목서 특유의 향긋함 166, 팜파스그래스의 풍성함 194, 낙우송 공기뿌리의 신비함 253 같은 다양한 매력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마침 곧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나무에 새순이 나기 시작하는 아주 잠깐의 시기(33)'가 온다.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문가에게 수목원이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꼽혔으니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들고 수목원으로, 숲과 공원으로 가보자. 책에서도 소개한 가로수들이 있는 거리도 좋다. 이 책과 함께라면 어디든 초록과 함께하는 봄을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 식물이름찾기/케어/커뮤니티/쇼핑을 할 수 있는 식물 관련 어플
** 기존의 서울역 고가 도로를 공중정원으로 바꾼 것으로, 2017년 5월 20일 첫 개장했다. 일자로 뻗은 길을 따라 50과 228종, 2만 4000여 개의 꽃과 나무가 심겨져 있다.
***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공자 『논어』 옹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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