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궤도 너머 - 불확실한 세계를 돌파하는 과학의 태도
카밀라 팡 지음, 조은영 옮김 / 푸른숲 / 2026년 2월
평점 :
'궤도 너머'를 앞에 두고 사실은 그 시선을 따르기보다는 엿보고 싶었던 호기심이 컸다. 과학의 태도로 삶에 접근해보기를 권하는 저자의 추천에 익숙한 어색함이 일깨워졌다. 먼 옛날 안 풀리던 수학문제를 공부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봤을때 예사롭게 그냥 이 공식 적용하면 되던데 하고 답하던 모습이 떠오르는 듯 했다. 문제를 보면 어떤 공식을 적용해서 풀어야할지 아는 것이 당연하다던 그 무구한 눈빛, 지극히 당연한 것에 대한 믿음과 재미까지 담겨있는듯 하던 그 모습이 보였다. 큰일났다.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만약'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과학적인 관찰과 결과 도출을 따져보는 게임을 한다고 했다. 나 역시도 만약을 떠올리는 일을 '재미로도 하고, 습관적으로도 하(51)'는데 나의 만약은 조금 다르다. 만약 회사에 있는데 갑자기 전쟁이 나면 집으로 가야할까 피난처로 가야할까 나 어느날 갑자기 비둘기가 된다면 나=비둘기는 나는 법을 알까 모를까 같은 만약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다. 저자의 만약이 '가설'이 되고 나의 만약은 인프피가 되는 다름이 재밌으면서 민망하고 씁쓸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름만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실도 가끔은 난해하고 대체로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의 보편을 설명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자신의 상황을 긍정하고 노력해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했는지 느껴졌다. 더불어 암세포 연구나 암흑 물질, 코로나 백신, 중력파, 양자역학 같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졌다. 이 내용들을 흥미롭게 읽고 다 이해한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지나치게 개방적인 자세 때문에 갈피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반대로 마음을 완전히 닫은 채 선입견에 휘둘리지도 않을 것. 34"
과학을 향한 자세를 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관계 보편의 기조나 다름없다.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다른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 것. 이렇게 생각하니 염려되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과학의 시선이라고 해서 나에게 전혀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학의 정석을 보고 놀랐던 마음이 과학이라는 말에도 겁을 먹었었다. 이제 어른이니 더이상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조금 더 친근한 마음으로 접근해나갔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 다른 학력과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 대조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 해결과 수평적 사고에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와 실제 세계에서의 응용에서 형평성을 보장하는데도 대단히 중요하다. 182' 이 다양성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이제는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기에도 너무나 보편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남성 중심의 연구, 인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 결과의 내용을 보고 다양성을 고려한다는 것이 어떤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깨달았다. 유연과 확장의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통해 이해와 존중의 고정된 방향으로 보고 있었던 시선을 바꿔주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부분은 8장 편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의식 또는 무의식으로 운영되는(228) 편향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MBTI라는 것이 유행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테스트를 해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결과가 자신과 꼭 맞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끔 결과값이 달라진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보이는 것과 실제 자기의 모습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중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난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확언하는 사람 중에 진실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적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있지 않은가.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이 본인이 맞을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자신은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바라는 대로 스스로조차 속이고 있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 외부로 뻗어나가기보다 내부로 검열부터 들어가는 이 비생산적인 편향에 대한 강박적인 균형과 저항 욕구는 "어차피 개개인은 모두 셀 수도 없이 많은 인지 편향을 지니며, 전혀 편향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중립에 가까운 세상에서 살 가능성은 없다. 247"는 말에 조금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이해를 위한 확장을 하며 책을 읽는 동안 자신에 대해서는 축소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도 되었다. 과학이 자신에게 낯선 언어일 것이라는 생각, 저자는 나와는 다른 능력, 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구분 같은 것들을 바꿔나갔다. 처음엔 보편의 궤도를 넘는 생각과 시선을 말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각자의 궤도를 가진 사람들이 그 너머에 있는 외부와 타인과 닿아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방법을 열성적인 전달자를 통해 만나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