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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
김효원.김현웅 지음 / 심심 / 2026년 1월
평점 :
요즘은 평가와 경쟁, 훈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위축시킬까봐 교육 과정에서 배제해나가는 추세라고 한다. 너무나 달라진 교육 현장에 대해 가끔 뉴스를 볼 때면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옛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사고 등의 문제가 생길까봐 이제는 학교에서 소풍도 가지 않는다는 변화가 며칠 전에도 뉴스에 나왔다. 그런데 어른의 의도는 분명 좋았는데 그 의도가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건 아니어서 경쟁과 성취의 즐거움을, 배움과 반성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아이들은 도전과 좌절 앞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일이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처음 경험한 벽 앞에서 극복의 경험 없이 지나치게 낙심하고 포기해버린다는 것이다. 한 아이라는 세계를, 우주를 키워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하고, 어떻게 해야할까? 요즘은 이렇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다고 하기 전에 어른과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생각과 자세를 준비해야할지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통해 파악해보고 싶었다.
차례를 눈으로 살펴보았을때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 4장 진짜 똑똑함과 가짜 똑똑함 중에 '엄마가 만들어준 똑똑함 130' 이었다. 어린시절에 비추어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거나, 반장이 되거나 하는 뛰어남은 본인의 능력보다 어떤 뒷받침을 받느냐로 티가 나는 경우가 많았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 효과가 초6 선우의 예시 뿐 아니라, 고2 학생의 예로 나오고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준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와 부합하는가,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는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가는 다른 문제의 이야기다. 남들이 다하는 것, 하라고 하는 것을 어영부영 따라가는 것도 벅찼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항상 깜깜한 문제였던 것이 생각났다. 모범적이거나 우등생으로 꼽히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것이 있었던 친구들이 얼마나 빛나보였던지, 그것이 남들과 다른 길이더라도 개의치않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보였던지 모른다. 그게 중심/목표를 가진다는 것이었구나 싶다.
요즘은 지식을 쌓는 교육 뿐 아니라 인격과 품성을 위한 윤리와 도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느끼는데, 특히 호주의 16세 미만 SNS 금지법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있다. 책에서도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공감 능력과 도덕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168)' 같은 단락에서 이 점을 짚어주고 있어 관심있게 읽었다. 우리도 호주처럼 인터넷에서 무분별하게 마주하는 혐오와 도덕적 해이가 그저 재미라는 말로 뭉그러진 채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현실을 제대로 짚고, 다소 극단적일지라도 분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이 점은 '개인의 윤리성은 사회 전체의 윤리성을 넘어설 수 없다(170)'는 말처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좀 더 강력한 처벌과 규제,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느끼게 했다. 결국 사회와 어른의 모습을 거울 삼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니, 요즘 애들은 하고 탓하기 전에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자꾸만 생각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옮겨갔다. 우리 삶에서 '관계'속에 생겨나는 문제의 대부분은 상대방을 통제하고픈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식 연애 방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통제성이 강하다는 비판을 본 적이 있다. 하루에 연락을 몇번이나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시작이었는데 한국만큼 연락을 자주, 많이 하고 또 그 빈도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번씩 잘 잤는지, 밥은 먹었는지, 지금은 뭘 하는지 물어보고 답을 듣는 평범한 일이, 아무리 바빠도 잠시 짬을 내서 상대방에게 연락은 한 번 해줄 수 있지 않냐는 말이 과한 집착과 통제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이것이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그런데 이 '통제'는 연인 뿐 아니라 가족간에서도 동일하게 보였다.
'스스로 중심 잡는 아이들의 비밀, 자기결정력'을 읽을 때도 먼저 등장하는 것이 "과잉보호와 과잉통제(25)"에 대한 언급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만들고 싶다는 부모의 보호와 통제가 아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혼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그래도 미성년 시기에는 어느 정도 통금이 필요한 것은 맞지 않나 통제에 동의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본다는 한계 때문일까. 같은 통제는 반대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부모를 향해 그 영향을 끼친다. 부모님이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고, 운동도 하시고, 자잘한 것을 아끼거나 하는 오래된 습관같은 것을 바꾸시길 바라며 잔소리를 한다. 키오스크 같은 것의 사용법도 배웠으면 하고, 제사나 명절 음식 같은 것도 그만하고, 요즘은 책 잡히기 쉬운 옛세대 특유의 오지랖도 웬만하면 참으시라 하고 싶다. 내가 바라는대로 하면 더 편하고 좋을테니 바꿨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도 사실은 상대방에 대한 통제가 아니었나.
교육서를 앞에 두고 너무 멀리 다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이렇게 통제 받았던 청소년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 통제가 이렇게 우리 삶과 관계 속의 전반적이고 고질적인 특성이자 문제라면, 이러한 경향을 해소해줄 수 있는 방법은 책에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 교육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관계맺기에 있어 통제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생각된다면 함께 고민해보며 읽어도 좋겠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생태계를 가지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먼저 좋은 본보기가 되는 기준을 세워야하고, 그 기준을 강요나 압박이 아닌 방식으로 제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이 고민을 하는 어른에게 든든한 받침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