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예술
이선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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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의도대로 감상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처음엔 내가 이렇게 많은 예술 작품들을 알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게 놀랐지만 바로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걷다가 예술'의 의도였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말 그대로 " 일상에서,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예술'이 되 "어 등장했다. 어느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도 모르게 설치되어 있던 작품들이 배경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야, 예술작품!' 

<해머링 맨(13)>에 대한 감상은 비슷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의식하지 않으면 <해머링 맨>의 움직임조차 알아채지 못할 때가 있지만, 처음 근처 영화관을 찾으며 마주한 <해머링 맨>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천천히 망치질을 하는, 사실은 다른 해머링 맨들 보다는 빠른 움직임일, 그 모습을 보려고 잠시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 첫 인상을 떠올리고 나니 잊고 있던 지나가버린 호기심과 열정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처음 시작이 <해머링 맨>인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면, '걷다가 예술'을 읽는 동안은 익숙함이 낯선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 가치와 의미를 다 전하지 못하고 있었을 다른 작품들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가 커졌다. 단순 재미로 굳이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왔던 <러버 덕(32)>, 전에는 솔직히 불평했던 빨강을 이제 멀리서도 저기가 여의도구나 하게 된 여의도의 <파크원(51)>, 카페 가려고 찾았던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건물(86), 지난 봄 김환기 전을 소개했던 솔올미술관(156)처럼 보고도 몰랐던 예술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특별했다. 소개된 장소들의 사진이 모두 실려있다면 바로 기억을 되살리며 읽기 더 좋았겠지만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아도 큰 어려움이 없다. 

작품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중에 신라호텔 로비에 있던 "박선기의 <조합체 130121>(111)"는 예쁘다는 이유로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어 아쉬웠다. 알고 볼 걸! 조용히 흔들리는 비즈의 반짝임이 시선을 사로잡아 갈 때마다 바라보곤 했지만 여느 샹들리에 장식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겼는데, 이 또한 작품이라고 하니 갑자기 새삼스럽게 여겨졌다. 먼지라도 쌓이면 청소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나 했으면서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다음에 가면 괜히 아는 척 허세도 부리고 싶어지고. 

큰 건물들이 왜 외부나 로비에 조각이나 동상을 세우고 그림을 걸어두는지, 그것들이 길을 걷고,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잠시라도 우리의 시선이 머물고 어떤 짧은 인상을 남기는 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예술과 문화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남긴다. 바쁘고 무심한 시간 속에서 작품을 알아보고 감상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배경처럼 놓여진 예술작품들이 부재했다면 우리의 도시는 더 삭막할 것은 분명하다. 길에서 마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무표정한 굳은 얼굴로 서둘러 경쟁하듯 걷는다고들 하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로운 태도로 우리 주위의 예술에 한 번 더 시선을 두고 걷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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