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 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이혼법정 이야기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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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서로를 아끼며 사랑해야 할 그때보다 상대방이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리에 가까운 사실인데, 웬일인지 희한하게 그 중요한 시점에서 많은 사람이 눈을 감고 생각하기를 멈추어버립니다. 15"

 요즘 이혼은 결혼보다 흔해서 흠도 아니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혼과 관련된 소재로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흔하다. 흔하고 흠도 아닐지라도 그 과정은 분명 순탄하지도 괜찮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더 행복한 부부생활을 원하는 부부와, 언젠가 부부가 될 사람들'에게 권한다는 표지 문구를 보며 한동안 궁금했다. 왜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일까, 하고. 이혼과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질텐데, 타인의 불행을 보며 자신의 상황을 비교해보라는 것일까? 결혼생활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보여주며 각오를 다지라는 것일까? 어느 쪽도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책을 읽는 초반, 판사의 입장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나, 혼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쪽의 입장에 서려고 하는 상황을 볼 때 마음이 불편했다. 

 " 결혼한 남자가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와 부정행위를 한 것은 너무나 잘못된 행동임이 분명합니다. 평생 아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큰 잘못입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판사의 눈에 보이는 남편의 속마음이 아내에게는 전혀 보이지가 않는 듯해 안타까웠습니다.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한 번 쯤 용서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애꿎은 카카오톡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80"

 특히 이런 내용을 볼 때, 생각의 결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어차피 남편은 가정으로 돌아올 것인데, 이혼을 해버리면 그 자리를 상간녀가 꿰차고 들어와 아내만 손해일 것이라며 상간녀가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 상간녀와의 관계가 끝나면 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필 것이고 아내의 고통은 반복될 것이라 여겨졌다. 게다가 이미 신뢰가 무너지고 함께 있을수록 고통스러운 사람과 누가 이기고 지는 기싸움으로 버티고 살아보았자 마음이 괴로운 시간만 지나지 보상은 될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보니 불편함을 느끼던 부분에서 왜 법대로 하지 않지, 왜 참고 조정하라고 하지 궁금해하다 보니 처음엔 답답하기만 했다가 점차 내가 그동안 너무 사이다적인 해결 방안만 쫓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혼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보니 부부 두 사람의 상황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이 꾸린 가정의 자녀들 양육 문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런 내용들은 부모 모두 양육을 거부하여 상대방에게 양육을 떠넘기기 위해 버리다시피 두고 가거나, 심각한 폭력을 가한 학대 사건마저 있어 읽기 조차 안타깝고 괴로운 일들이 많아 한동안 덮어두고 말았던 부분도 있었다. 일로 사건을 접하더라도 타인의 일일 뿐이라고 거리를 두더라도 이런 괴로운 갈등의 면면을 살피며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저 몇몇 사건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마는 동안 얼마나 많고 다양한, 차마 글로도 풀어내지 못할 사연들을 봐왔을까 생각이 미치니 다르게 보였던 면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가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 법리적으로 가장 최선의 답안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판단이 때로는 나와 다른 생각을 만들어냈던 것은 아닐까, 읽으며 천천히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타인의 감정과 주변 환경은 분명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구성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게는 그때의 기분, 크게는 가치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생각을 하기 전까지 이혼 사건을 판결하는 판사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이혼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사정은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가정법원에서 이혼주례를 하는 판사의 사정을 들어볼 경우가 주위에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판사의 존재는 마치 NPC*처럼 여겼다. 하지만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의 저자는 첫 판결을 내리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수없이 고민했고, 내리고 나서는 허무함과 충격을 느꼈다고 한다. 누구보다 사랑과 가정의 종말을 가까이에서 바라봐야 했을 '사람'이 거기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비디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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