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을 찾아갈 거야
정규환 지음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시작부터 감성 가득한 사진을 연달아 싣고 시작하는 점이 독특했다. 글보다 시각적 자료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긴 설명이 필요없이 이게 내 감성이야, 하고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했고, 효율적인데 싶기도 했다. 미감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은 그저 부러워하며 갬성을 담아놓은 사진을 한장씩 들여다보았다. 더위가 끈질기게 달라붙는 일상에 지쳐가던 사람의 메마른 눈도 조금은 촉촉히 변하는 듯 했다.
초등학교 수련회 때 전교생 앞에서 '장기를 자랑'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던 경험을 읽으며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학교를 대표해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 있었는데, 당시 사춘기였고 솔직히 부담이 됐던 나는 해보기를 포기했다. 나가볼래,했던 권유가 나가, 왜 안나가!하는 강요로 바뀌었고 선생님이 모난 눈으로 날 다그치는 동안 묵묵히 거부만 했다. 전교생 앞에서 개미 두 마리(20), 하는 춤을 추었던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부담스럽단 이유로 학기 내내 미운털이 박혀 담임의 눈치를 보느니 그깟 대회 그냥 나가볼걸 하는 생각이 이제와 들었다.
사소한 공감 뒤에는 조금씩 웃음이 따라붙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대신, 면허를 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다양하게도 꼽는 면허를 소지한듯한 저자의 달변도 재밌고, '해외여행이 싫어졌다'며 '그 와중에 유명인들이 낯선 곳에서 먹고 놀고 장사를 하는 예능은 최고로 싫다(39)'고 단언하는 호쾌함에는 웃음이 나왔다. 레몬빛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 표지의 책을 낸 사람이 '핑크색 책은 고르지 않는다(50)'는 자신만의 기준을 말할 땐 입술을 말아물고 웃었다. 하우 투 텍스트힙이라니.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이야기(94)와 명대사(144)는 따로 있지만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읽어보시라, 그럼 안다.
한참 웃으며 책을 읽다가 문득 남은 장수가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시작은 추천사와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끝은 어떠한 마무리 없이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면서 함께 정리되었다. 영화를 봐도 끝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처럼, 요즘은 버티고 버텨 쿠키 영상까지 보고서야 끝이 나는 것처럼 마지막에도 뭔가 더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없었다. 마치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 크레딧 조차 올라가지 않고 상영관에 불이 훤히 켜진 채 쫓겨난 기분이었다. 어쩌면 쿨하지 못한데 눈치까지 없는 손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고 갑작스러운 끝이 아쉽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유부 게이임을 밝히는 솔직함에 구남친이자 현남편 자랑을 알차게 끼워넣는 팔불출 면모를 밉지 않게 드러내는데, 전화하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며 끊이질 않는 찰진 수다를 떠는 친구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밌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이니 가볍게 읽어볼만 하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눅눅히 들러붙는 여름때문에 몸도 마음도 늘어지는 주말 오후, 돈이나 성공을 운운하지 않는 은유적인 제목에 사람 얼굴이 대뜸 표지에 실려 눈앞에 들이밀어지지도 않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힙'해보이는 '사랑을 찾아갈 거야'를 읽어보자. 무료함을 채우고 활기를 불러올만한 제법 야무지고 찰진 읽을 맛을 선사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