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넘어 도망친 21살 대학생 - 울면서 떠난 세계여행, 2년의 방황 끝에 꿈을 찾다, 2024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홍시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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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멋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편하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옷차림, 기능에만 충실하겠다는 기물들, 멀리 보이는 낡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고집 센 자아가 느껴지는 뒷모습이 어우러진 표지가 묘하다. 21살 대학생이 학교에서 도망쳐 울면서 세계여행을 떠난 2년간의 이야기를 두고, 책에는 자랑스럽게 2024년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것 또한 묘하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을 하라고 목표를 쥐어주었다가 이제는 꿈을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 묘한 궁금증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을까. 

 " 반대로 나는 몸뚱이에서 터져 나오는 실을 뜯어내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된 이후 얄팍했던 의지마저 박살이 났다. 나는 어떠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책을 펴는 것도, 심지어 의미 없이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학업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회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뒤처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학교를 도망쳐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1" 

 그런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 '떠남'에 대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세상을 마주보고 사람을 경험하고 실수와 실패에 부딪혀봐야 할, 성숙의 거리감을 코로나에 빼앗긴 세대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타인을 NPC처럼 취급한다, 마땅한 대답이나 반응없이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 민감하다 등등 요즘 MZ라는 말로 뭉뚱그려 버렸던 세대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어본 듯 했다. 게다가 다들 문을 닫고 더욱 안으로 고립되기를 힘썼던 코로나 시기에 떠난 여행이라니 사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관광지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떠날만 했구나 이해가 됐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에 춤에 대한 이야기(90)는 꽤나 공감도 되고 감동적이었다. 부족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함께이고 싶어하는 마음 모두가 이해가 됐다. 무심히 한 말을 꼭 지키려는 카툴라(109)를 통해 그동안 뿌려두었던 빈말들을 반성하기도 했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다이버가 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는데 그가 말했던 '다합(115)'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비겁하지만 그 '인도스러움'을 보며 나는 가지 않을/못할 그 곳을 누군가 대신 경험해서 알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세상 가기 어려울만한 여행지를 골라다닌 저자 덕분에 열정과 기운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전설이 된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원래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처럼, 그의 도전은 때로 너무하다시피 무모하다. 특히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간다에 입국하려고 한 시도나 숙소없이 밤길을 걷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재워달라고 했다는 주항의 일화(126)는, 게다가 무지와 무례를 포용해준 상대의 선의와 예외적 경우를 두고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의 갯수는 얼마만큼 무모한 세상에 닿았느냐가 결정한다며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책임질 용기가 있다면 몇 번이고 기적에 닿을 때까지 몸을 던져도 된다(49)'며 말을 맺는 부분은 어리석다고 여겨졌다. 낯선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 최악의 결과가 대체 무엇일줄 알고. 안전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기 생에 주어진 시간과 젊음도 아껴야 한다. 

 "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마저 일상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 74"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꿈꾸며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솔직하자면 '낭만'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더이상 특별하거나 고유하지는 않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일상을 충실히 쌓아가는 사람들의 꾸준함에 더 매혹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망이 마주보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삶의 앞으로 끌려나갈 때마다 느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다. 도망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젊음의 특권 아니겠는가. 젊음들에게는 시간이 많고 때로 서툴긴해도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만큼 유연하다. 그가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비일상, 느꼈던 감정들이 가슴 속에 오랜 시간동안 남아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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