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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의 눈
토마 슐레세 지음, 위효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평점 :
'모나의 눈'은 실명의 위협이라는 불안을 품은 동시에 삶과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색으로 채워진 깊은 애정과 신뢰가 담겨 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무 전조도 없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나의 눈은 63분간 기능을 멈춘다. "엄마, 온통 까매요! (11)" 10월의 일요일, '그냥 그렇게' 열 살 소녀의 눈이 잠시간 멀었다. 원인도 해결 방안도 알 수 없이 언제 또 같은 문제가 얼마나 길게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나의 부모님은 모나가 가장 믿고 따르는 할아버지 앙리에게-모나는 하비라고 부르는- 매주 수요일마다 아동정신의학과를 함께 통원해주길 부탁한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앙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앙리와 모나 둘만의 비밀스럽고 특별한 상담치료가 시작된다.
" 할아버지는 계획을 세웠다. ...... 일주일에 한 번, 한결같이, 그는 모나의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 가 작품 하나를, 단 하나의 작품만을 바라보게 할 것이다. 처음에는 색과 선이 펼쳐내는 무한한 진미가 손녀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도록 말없이 오래 바라보리라. 그런 뒤에는 시각적 희열의 단계를 지나 예술가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삶에 대해 말해주는지, 예술가들이 얼마나 삶을 빛나게 해주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풀어내리라. 31"
이들이 일주일에 하루, 딱 한 점씩 살펴보기로 한 예술 작품들을 독자는 책의 뒷편에서 사진으로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각 단락에서 작품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면 그들처럼 똑같이 책의 뒷부분으로 넘어가 가능한 오래도록 면밀하고 주의깊게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머리속으로 여유가 된다면 종이에 떠오르는 감상, 의문, 사소한 어떤 것들이라도 간단히 적어본 뒤에 다시 그 둘의 대화로 돌아와 조용히 들어보자. 내 감상과 같거나 다른 점, 더 확대된 서사나 비어있는 의문들을 따로 채워가며 읽어나간다면 사진으로 대신하는 작품 감상의 아쉬움같은 것은 털어내고 책의 두께만큼이나 충실한 감상이 될 것이다.
예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두툼한 두께의 책을 앞에 두고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앙리는 모나-와 독자-를 위해 충분히 쉽게 시대와 문화를 통한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어린아이 대하듯 생략하거나 꾸미지 않았는데 책에서는 이를 앙리가 '모나를 존중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는 더 폭넓은 층의 독자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장치로 다가온다. 열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 내용이라고 무시할 수 없이, 때로 모나가 이해하고 감상한 것보다 더 얕게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절감하며 읽게 되는데 " 흔한 생각과는 달리 예술의 깊이를 뚫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건 냉큼 찾아드는 열락이 아니라 지루한 연습이라는 것을. 39" 독자도 함께 깨우친다.
모나와 앙리가 일주일에 한 번 하나의 그림을 살펴보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모나는 열 한 살이 되고, 친구 릴리와의 이별을 경험하기도 하고, 신경 쓰이지만 마음도 쓰이게 하는 남학생을 의식하기도 하고, 오르셰의 학예사 엘렌과 새로운 만남을 갖기도 하고, 경영난에 빠져 알콜에 의존하는 아빠를 살피기도 하고, 최면 치료를 통해 내면에 도사린 줄 하나(401)를 파헤치기도 하며 천천히 성장해나간다. "계속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이 덧없다는 생각에 덴 가슴을 진정시키고 모나는 수긍했다. 그래, 계속 나아가야 하는 거였다. 247" 어린 아이의 유년 시절이 하나둘 천진함을 벗어가는 과정이 조금은 슬픈 색채를 띄며 성숙해질 때마다 쌉쌀하고 아린 느낌을 받았다.
마침내 52번의 감상이 끝나고 난 뒤, 책을 덮으며 묘한 감상에 사로잡힌다. "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모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가 들은 것에서 스스로 메시지를 끌어낸 뒤 할아버지에게 그걸 따르라고 권했다. 앙리는 지금 눈앞에서 놀라운 변혁이 이뤄지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는 현기증에 사로잡혔다. 470" 앙리가 느꼈을 그 현기증에 가까운 감각, 모나의 성장 뿐 아니라 책을 읽는 잠깐의 시간동안 마치 52주의 시간을 순식간에 겪어낸 듯한 어지러움을 공유한다. 처음엔 시련을 이겨내며 예술의 아름다움과 함께 성숙해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한 번 더 비틀어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하는 고통스럽지만 빛나는 성장과정을 세심하게 담아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모나의 눈'이 어른들에게는 물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뜨는 시기의 아동청소년들에게도 인상깊은 책이 되어주리라 믿으며 추천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