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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 단정치 못하다고? 그 애 엄마나 할 법한 말이었다. 루앤의 엄마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면 그 애가 '단정치 못하다'라는 말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9"
어른은 아이의 거울, 아이 앞에서는 물도 함부러 마시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 사는지 물어볼 때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자가인지 전월세인지 구분할 줄 안다고 한다. <어린왕자>에서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고 꼬집은 것처럼 그때 어른들이 셈하던 숫자를 요즘은 아이들도 헤아린다.
그 셈법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보면 주변 어른들의 말투와 행동을 그대로 따라 배우게 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조지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루앤이 조지나에게 상처를 준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아이들의 태도와 변화를 문제 삼으려거든 우리 사회와 어른인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먼저 생각해보아야 겠다.
"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점점 커졌다. 이대로 두둥실 날아올라 천장을 뚫고 새파란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애들과 함께일 수 없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모두들 팔목에 하나씩 두른 팔찌도 나에겐 없다. 이 아이들이 쇼핑몰을 구경하며 팔찌 등을 사는 동안 나는 월그린 할인 매장 화장실에서 내 속옷을 빨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스파게티 가락을 돌리면서 윌리를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96"
지금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있는지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사람은 오히려 그러려니 싶고, 비슷한 삶들 속에서는 어차피 사는게 다 비슷하겠지 싶다. 갑자기 누가 복권에 당첨됐다고 한다면야 부러우니 맛있는 밥이라도 한번 사주십사 하겠지만, 더 가졌다고 해서 거리감을 느낄 일도 없다.
하지만 조지나처럼 어렸을 땐 다른 애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나 다양한 색의 파스텔 세트, 더 커서는 새 핸드폰과 신발, 겉옷 같은 것들도 '나도' 갖고 싶었고 꼭 '나만' 없는 것 처럼 생각하곤 했다. 같이 어울리려면 똑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대화 소재도 빠지지 않고 분위기가 맞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급식실에서 밥 혼자 먹는 일이나 이동수업 혼자 나가는 것, 조별 활동을 자연스럽게 짤 친한 무리들이 없는 것 같은게 아무렇지도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길 수 있지만 실제로 그 나이때는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어렵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직장인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우울감으로 회사를 가는 길에 사고가 나면 출근을 안해도 될테니 작은 사고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경우가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조지나를 보며 씩씩하고 영리해보이는 아이의 마음에도 우울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조지나가 더는 차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엄마와 다투는 모습을 보며 처음엔 어려운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엄마에게 떼를 쓴다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조지나의 불만은 그저 철이 없는 어린아이의 투정이 아니었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 조지나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보호와 양육환경에 대한 요구였다.
같은 장소에서 이틀 이상은 머물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차에서의 생활, 빨래나 샤워같은 개인 위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낮시간 동안 어린 동생의 보호자 역까지 해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결국 조지나가 비어있는 외딴 집에서 부랑자와 마주치게 되는데 어느 누구도 이를 알지 못한다.
무키 아저씨와 조지나가 빈 집에서 마주쳐 대화를 나누는 길지 않은 장면에도 책을 읽는 동안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동화같은 이야기 속의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염려했던 문제들은 없었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소녀와 성인남성이 주변의 시선이 닿지도 않는 장소에서 있는 장면은 긴장감을 주었다.
다른 하나는 조지나와 다투며 엄마가 감정적으로 크게 폭발하거나 지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미 가족을 버리고 가정을 떠난 아빠는 엄마가 느낄 생활고와 책임감의 압박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아빠가 무책임한 짓을 할 수 있었다면 엄마 또한 자신도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조지나는 엄마에게서 불안을 느낀다. "아니, 아무래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나가야 할 것 같다." 87", "나는 내심 불안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99" 엄마에게서 전해지는 절망과 우울을 민감하게 느끼는 조지나는 결국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가정의 위기가 사회로 옮겨오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 흔들렸다면 사회에서라도 어린아이들을 잠시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어야 했다. 학교 선생님도 친구 로앤의 엄마도 조지나에게서 변화와 문제를 발견했다. 이들은 그저 조지나에게 괜찮은지 묻거나,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 가정 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을 때 타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벤치 근처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이를 본 모텔 주인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평화롭게 놀고 있고, 성인 배우와 관객들만이 그 불온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순수한지, 때문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되는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도 엉뚱하면서 순수한 조지나를 중심으로 결핍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따뜻한 시선과 희망을 잃지 않고 마무리 된다. 그 점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더욱 강조하여 드러낸 대비가 되기도 한다고 여겨졌다.
책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고서도 각 인물들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성숙과 고통 앞에서 멈추지 않는 나아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읽고 감명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난 뒤에 깊이 생각해 볼 수록 동화같지 않은 현실을 동화처럼 풀어냈단 감상이 뒤따랐다.
'모든 학교 도서관에 반드시 꽂혀야 할 필독서'라는 소개가 있지만 어른의 시선으로도 아이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동명의 영화로 다시 한 번 감상한다면 더 즐거울 것이다. 미디어에 더 익숙한 세대는 영화를 먼저 보고 그 즐거운 감상을 책으로 확장해 접근해도 좋겠다. 읽고 난 뒤에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