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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먼 이름에게 ㅣ 소설의 첫 만남 36
길상효 지음, 신은정 그림 / 창비 / 2025년 5월
평점 :
"나는 내 인간을 사랑한다. 나에게 사납게 짖어 대지 않는, 나를 굶기지도 걷어차지도 않는 인간을.
나를 씻기고 먹이는, 숨이 막히도록 나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는, 밤이면 곁을 내주고 함께 잠드는, 해가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나를 울고 싶게 하는 인간을. 그러나 그를 사랑할수록 내 반쪽에 차오르는 것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우리는 어쩌다가 인간의 세상에 왔는가. 26"
첫 시작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났다면, 마지막은 벅차올라서 눈물이 났다. 이 작은 개의 이야기는 번식장에서 학대를 당하다 구조되어 한 인간의 집으로 입양되면서 시작된다. 짧게 줄인 문장 안에도 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에 의해 이렇게까지 이용당하고 고통받아야 하는가, 모두가 알고 있는 부조리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성토하게 만든다.
고통스러웠던 번식장에서의 시간부터 자신을 보살피는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과 함께하기까지 작은 개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작은 개는 번식장의 학대에서 살아난 생존자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계속되는 질문이 지금껏 이어져 온 인간과 개, 두 세상의 첫 만남을 찾아 시간을 거스른다. 오래 전 야생에서 생활하던 늑대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사냥하던 인간 무리에게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으로. 작은 개는 그토록 궁금해하던 질문의 현장에서도 그를 부르는 인간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데, 그런 점이 안타까우면서도 곁에 있는 강아지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게 만들기도 했다.
고대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읽었던 시튼의 동물기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늑대왕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떠올라 금새 읽어나갔다. 먼 옛날 인간이 생존을 위해 늑대들의 습성을 따라했고, 늑대들 역시 생존을 위해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했다는 주고받음을 잘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세상'이 동물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는지, 또 그 세상에 맞춰 살아가게 된 첫 시작은 어떠했는지를 '나의 먼 이름에게'는 그려내고 있다. 냄새를 맡아서 동족을 확인하거나, 두려울 때의 본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 애견 카페 앞에서 견종으로 구분되는 차별 등 개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어떨까 많은 생각을 하고 썼으리라 짐작된다.
짧은 분량과 익숙하면서도 섬세한 삽화, 여운을 남기는 내용이 한 번 읽었어도 자꾸만 책에 손이 가게 만든다. 자신 곁의 소중한 존재가 어떤 마음으로 나의 세상에 편입되어 왔을지, '나의 먼 이름에게'를 읽으며 가늠해보아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