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면허 -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
패트릭 빅스비 지음, 박중서 옮김 / 작가정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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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면허'의 도입부를 읽으며 "전 세계 이동이 사실상 그치다시피 한 순간(14)" 지난 코로나 팬데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기간 동안 다시 한 번 코로나에 걸려 고생했었기 때문에 전세계를 멈추게 만든 여행의 규제는 둘째치고 코로나의 사악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기도 했다. 

 여권이 가진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그 유용성의 그늘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만나게 되면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 불안감은 영화 [터미널]의 소개(44)가 등장했을때 극대화된다. 빅토르 나보르스키는 신분이자 보호가 되어 줄 여권이 아무 소용도 의미도 없어진 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의 공항에서 머무르게 된다. 

 갑자기 소속과 증명이 없어져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보다 더 강한 힘과 의미를 가진 여권/증명서/물건을 강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보다도 더 비싼 값어치를 지닌 물건, 미라에게도 "유효 여권이 제공하는 보호가 필요(61)"하다는 주장이 나온 람세스 2세의 미라 여권 사건과 대비된다. 

 앞서 입국심사대에서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책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었다. 증명이 부정되고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난데없는 이 불안이 생각보다 보편적인가 싶었다. "[파르마 수도원]의 파브리스가 오스트리아 국경 검문소를 질레티의 여권을 이용해 빠져나가려고 할 때 느끼는 불안감은 고전에 해당하는 이후의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묘사된 '여권 불안'의 전조에 해당한다. 136" 

 더불어 최근 전시를 하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이야기(222,250)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비록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의 신분으로 압박의 피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샤갈 개인에게는 고난과 불운의 시간들이었겠지만, 작품세계에 대해 이해를 더해주는 이 이야기를 미리 읽고 전시를 다녀왔다면 더욱 깊이있게 관람할 수 있었을 것 같다. 

 " 어느 러시아인 망명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은 단지 신체와 영혼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권도 필요하며, 그게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할 겁니다." 시민권을 포기하고 체류하는 국민국가의 환대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자, 츠바이크는 "인간은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며, 만사가 공무상의 은혜에 의한 호의 말고 자신이 권리는 전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절실히 자각하게 되었다. 238" 

 책에서 현 미국의 이민자 정책 변화로 인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드는 내용들이 있었다. 이민자 단속 반대 시위로 트럼프 정권은 60년만에 진압을 위한 군대까지 투입하여 전쟁이나 다름 없는 진압을 이어나갔다. 출생 시민권제를 폐지하고 이미 취득한 시민권이나 영주권도 박탈할 수 있다는 상황에서 츠바이크가 느꼈을 무력함과 불합리를 현재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대의 "여권 제도의 역사적 아이러니 (실제로 여권이 필요한 주변인과 추방자에게는 발급이 거절되었던 반면, 여권 없이도 다닐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특권층에게는 불편과 짜증만 야기했으므로) 160" 는 우경화 된 국제 정세와 이를 앞세워 미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 정권에서 반복되고 있다. 

 또, 여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었는데, "헤밍웨이의 '아내 동반' 여권(201)이나 조이스 가족의 여권 사진(173)"을 통해 여성은 여권에 남성의 세부 내용으로 언급/첨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남성/가장의 여권 없이 여성/아내 심지어 사진에 함께 찍힌 아이들은 이동할 수 없었다. 후에 여성 개인의 서류를 소지할 수 있게 되면서 여권은 새로운 '자율성(206)'의 기념품이 되었다. 

 언젠가 세계 각국의 여권 파워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여권이 가진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에 퍼진 적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순위를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우리나라 여권에 적혀 있는 문구,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를 보며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해나 아렌트는 "출생국과 연계가 끊어지는 것이야말로 인권에 엄청난 위기라고 주장(225)"했는데, 아마 우리가 여권 파워나 문구에 긍정적 감정을 느낀 이유도 바로 국가로부터 공인된 외부로부터의 보호와 보장을 느낄 수 있는 증명서임을 실감했기 때문이겠다. 여권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시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별 생각 없이 10년마다 갱신하곤 하는 여권이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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