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
머리나 밴줄렌 지음, 박효은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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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책을 읽으려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쉴 새 없이 딴 짓을 하는 자신을 보며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다니. 오히려 어렸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내가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것 같은데, '집중과 몰입의 시간(55)'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겠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답을 찾기 위해 몰입해온 잠깐의 '빈틈'에서 생각의 전환이 발생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의 시작에 앞서 게으름과 산만함, 걷는 시간과 여유, 재충전과 환기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당신들의 이름 옆에 붙는 수식-교수, 소설가, 시인, 크리에이터 등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가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생각으로 책 안의 모든 내용을 신포도 보듯이 할 수는 없다. 책에서도 " 어떤 이들은 '유익한 산만함'은 한가한 철학자들이 꿈꾸는 허상이며, 권리가 아닌 특권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크 랑시에르는 '유익한 산만함'을 오직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에 강력한 반증을 제시했다. 131"고 나와 같은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리고 이 살짝 비뚤어진 시선이 책을 읽어나가며 점차 풀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초반 다윈이 말하는 과도한 몰입에 따른 '쾌감상실증(33)'이란 것을 최근 읽은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보았다. 빅토르가 생명을 창조하는 연구에 몰입한 나머지 주변사람들도 챙기지 못하고 감정이 둔화되는 부분이 나온다. " 하지만 나는 꽃이 피거나 나뭇잎이 우거진 광경을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런 풍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홀린 듯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69. 프랑켄슈타인, 책세상) " 절망감에 매몰된듯한 빅토르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 외골수적인 집중력이 우울감과 고립감을 주었다는 다윈의 사례를 통해 다시금 인물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되었다. 

 현대의 우리 역시 원인은 다르지만 증상은 비슷한 중독을 가지고 있다. 2배속과 15~30초 정도의 짧고 직관적인 콘텐츠들을 통해 느끼는 자극에 익숙해져 긴 호흡으로 복합적인 감상을 스스로 이끌어내야 하는 콘텐츠들은 외면 받고 있다. '뇌의 스위치(39)'를 끄지 못하고 계속해서 핸드폰을 통해 이리저리 어플을 뒤적이는 일에 여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이를 핸드폰에 몰입하는 '주의력 과잉 장애'라 진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콘텐츠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집중력 부족과 끈기없음이 더 두드러진다 여긴다. 이 주의력 결핍 장애는 느긋한 사색을 방해하는 지나친 흥분 상태(40)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은 책의 중간중간 짧게는 한쪽, 혹은 과감히 양쪽의 모든 면을 들여 실어둔 흑백 사진이었다. 처음 나는 이 사진들이 그리 맥락에 맞지 않아 흐름을 끊고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다. 세번째 사진과 마주했을때 쯤 의도적으로 사진이 끼어들어와 집중을 깨고 정적이고 흐릿한 공간을 잠시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며 나에겐 집중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사진이 등장할 때마다 어느 순간 몰입을 방해받고 있단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이 작은 장치로 몰입 사이에 틈을 만든 점이 흥미로웠다. 

 " 그런데 인류학적 관점에 따른 산만함에 대한 설명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주의력 결핍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마당에 과도한 집중을 비판한 흄의 주장을 지지하거나 산만함을 옹호할 수 있을까? 112"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읽으며 반복해서 해온 행동이 있다. 다리떨기다. 긴 시간동안 다리떨기는 산만함과 복나감을 이유로 핍박 받아온 행동양식이다. 하지만 지금, 다리떨기에 대해 밝혀진 진실은 어떠한가? 스트레스 감소, 운동 효과 심지어 집중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갖은 장점이 드러났다. 단점은 보기에 안좋다는 것 뿐. 다리떨기와 흄, 집중과 산만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다. 언뜻 진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왜 '게으름에 보내는 찬사'라는 문제적 강의명을 달고 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시간을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 염려되거나, 주의력 결핍 장애인가 걱정되거나, 어린시절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바둑이나 서예학원을 등록한 이력이 있거나, 지금 다리를 떨고 있다면 혹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한번 몰입하면 주변 상황이나 소리가 차단된다는 사람이라면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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