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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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을 중학교 2학년 때에 앓는 것도 복이라는 말을 보았다. 웃긴 말이고 웃긴 명칭이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의 저자가 이십대에 한국을 떠나 독일 파리 중동 산티아고 인도 등을 머물며 앓았던 외로움과 고독을 나는 그보다 십 년 정도는 늦게 앓았다. 이제는 누구나 그런 때가 있구나, 하지만 괴로울 땐 이 마음이 왜 이런지 몰랐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는 조용한 시간이 흘러갔던 날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십대 때에는 사람과 사랑 사이에 취해서 빈 공간을 바라볼 줄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반짝이고 정신없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자신만 남았는데, 그게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고 초라해보였다. 그렇게 대단했던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푸르를 때 빛나고 앓았어야 했던 청춘을 뒤늦게 앓았던 것 같다. 청춘이란 말 싫다(353)고 했지만 그 지난하고 치열한 걸음이 청춘일 수 밖에. 

씁쓰레한 맛을 삼키며 책을 읽었다. '만약'이란 단어를 막연히 그렸다. 그러다 " 환갑이 되면 연애하고 싶고 마흔이 되면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김광석 아저씨의 말, 삶에서 꿈꾸는 시간이 있기 마련이니 인생에서 2년 정도는 길지 않은 세월인 것 같다고, 그 정도는 마음 놓고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에 눈물이 날 만큼 위로를 받는다. p190" 는 문장에서 멈췄다. 그래, 맞다. 인생 긴데 늦은만큼 더 살면 흐름이 좀 더뎠을 뿐 그리 늦은 것도 아닐지도, 싶었다. 내가 그렇게 늦었나 참 부족했다 아쉬웠던 마음이, 언제 무엇을 하든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졌다. " 시기와 나이는 중요치 않다. 누구나 자신만의 치열했던 순간과 가장 반짝이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그 한 시절은 그 누구도, 그 어떤 단어로도 단언할 수 없는 제각각의 인생이라 생각한다. p353" 

" 주위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자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투성이였다. 우리는 함께 있는 듯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허전함에 잠 못 들어 했다. p9" 처음 책을 펼쳤을 때부터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외로운 사람들 어쩌다 어렵게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 혼자 있기 싫어서 우린 사랑을 하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외로운 사람들/이정선)'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래된 노래를 종종 듣곤 했다. 가사를 곱씹다가, 책장 어딘가를 더듬어 헤매다가 한참 시간을 보냈다. "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외롭게 삶을 살고 있었다. 사랑하며 살아야 했다. 외로움도 슬픔도 견뎌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p246" 외롭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그조차도 할 수 없어서 그냥 나도 너도 그렇겠구나, 언젠가 만나는 날 그만큼 더 반가워하고 사랑해야지 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을수록 밝고 가벼운 것들만 보고 싶어졌다. 안그래도 사는게 갈수록 무겁고 어려우니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것들이 필요했다. 결말이 슬픈 것들은 손에 대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의 어조도 그리 밝지 않아서 읽는 동안 가라앉고 있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계절이 봄으로 가는 동안 수런했던 마음을 가지런히 빗어내리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결말도 긍정적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거야(베르세르크)' 처럼 시작했다가 행복은 내 안에 있는거야, 하는 동화 파랑새 같은 따뜻함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과정을 함께하는 여정 동안 소박하면서 섬세한 그림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기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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