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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평점 :
" "감당 안 되는 자폐아 데려오지 마세요" ... 키즈카페 직원, 분노의 호소 - 뉴스1 소봄이 기자 25.02.20 " 책을 다 읽고 난 다음날 무심히 인터넷 기사를 훑다가 본 기사의 제목이다.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다. 비단 '느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대체로 부모가 아이를 잘 보살피지 않고 방치해두는 상황에 대한 비난과 공감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소아조현병 진단을 받은 나무를 데리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이리저리 돌아다닌 가족의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여서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켕겼다.
대충 어떤 내용인지만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나무씨가 초등학생 때부터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는 내용은 당황스러웠다. 조현병이란 말에 소아라는 단어가 붙을 줄은 몰랐다. 망상과 불안, 환청을 겪는 어린아이라니 덜컥 겁이나고 충격적인데 18년 전의 가족들은 어떠했을까. " 조현병은 100명 중 한 명꼴로 흔하지만, 소아조현병의 경우는 1만 명에 한 명꼴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기가 막혔다. 정신병이라고?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 이 아이에게 일어나다니. 왜 이런 형벌이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온 것일까? 도대체 왜? 하지만 신에게 따져 묻는 것도 아이를 치료할 방법을 찾고 나서 할 일이었다. (p21) "
가끔씩 보게 되는 사회면 기사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운이 없다면, 어쩌면 내 주위에도'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 대안학교에서 나무는 선생님들이 사람으로 대해줘서 좋다고 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학교에서는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았다는 것인데, 아픈 와중에도 나무는 자신이 존중받는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어쩌면 아프기 때문에 더 잘 알아챘을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인지는 엉키고 감각은 예민하다. 아프기 때문에 존중이 더 중요한데, 아이는 일반학교에서 무시와 멸시를 받았던 것이다. (p105) " 나무씨와 가족들의 이야기만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불안과 사회적 조치에 대한 필요성이 더 큰 쪽이 어디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온 가족이 여러번 이사를 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아픈 나무씨를 위해 치료를 받고 환경을 바꾸며 노력해온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나무씨 가족은 정말 좋게 풀려나간 경우겠다는 짐작이 든다. 물론 이들의 고통과 노력이 적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조차 해볼 수 없이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을 만 명에 한 가정, 백명 중 한 가정이 있을 것이다. 돌봄과 치료는 모두 비용과 시간, 인력이 든다. 이것들을 개인이 감당하려다 어느 한 균형이 무너져나가게 되면 그 가정은, 환자는 어떻게 될까. 다시 낮에 보았던 키즈카페와 자폐아에 대한 기사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 생활을 했던 나무씨를 떠올린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 돌이켜보면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나무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일을 하지 않았다면, 매일 출근해서 집중할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나무의 병을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원망하고 탓하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건강한 관계가 유지된다. 특히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더더구나 그렇다. 가족은 지나치게 뜨거운 관계이기 때문에 거리를 잘 유지해야 사랑 사이에서 길을 찾을 수 있다. 사랑과 돌봄 노동 사이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고. (p87) "
아픈 첫째 아이인 나무씨를 보살피는 지난 18년간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때로 나무씨의 동생에게 마음이 쓰였다. 건강한 둘째는 더 어린 나이에 어른인 부모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짧은 글로 그를 만났지만 엄마와 오빠가 극복의 이야기를 써가는 동안 그는 어떤 시간들을 보냈던 것일지 궁금했다. 책에 나무씨와 저자가 출연한 유튜브 내용이 나오는데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는 한 편, 얼굴을 보고 더 가깝게 느끼게 된다면 마음이 더 복잡할 것만 같아 어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우리 사회의 문제들과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남들과 다른,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이 외면에서 비롯됨도 있을 것이다.
책을 한 권 읽었다고 갑자기 사고와 행동을 바꾸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시간이었다. 행복한 결말로 끝을 장식하는 동화처럼 마음이 편한 내용을 담은 책은 아니지만 사회 성원으로 성숙해나가기 위해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