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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평점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는 소설' 이라고 짧은 한 줄 평을 남겼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계속해서 괴로웠다. 내가 한 것은 질문이 아니라 변명이고 항의였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편에 선다. 아무래도 주인공의 시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 서사에 몰입하고 입장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멜라닌'은 나를 철저히 시선으로 만든다. 책에서 나오는 수많은 배경인물들 재일을 지켜보고 재일을 무시하고 재일을 구분짓는 시선이 나였다.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하려면 가능하겠으나 대부분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가 기사로 접하는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판단하고 비난하는 인터넷 대법관의 자세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신념, 판단, 상식 등이 마땅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 는 평론가 신형철의 문장은 이런 현상을 꿰뚫는다. 평범한 나 자신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멜라닌'은 한국사회의 문제 그 자체이다. 그러면서 한국적이지 않다. 장애, 국제결혼, 인종차별,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한부모가정, 마약, 학교폭력, 이민자, 세대갈등, 정치, LGBT, 범죄 등등 생각나는 핵심 단어들을 늘어놓기만 해도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그릇 안에 섞여 담긴 것이 비빔밥을 떠올리게 하는데 한국적이지 않은 것들- 이민 가정의 생활상- 마저도 한국적인 방식으로 끌어안았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라고 하듯 어떤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을지 몰라 다 담아본듯하다.
"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p.7 "
'멜라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도입부인 첫 문장을 제외할 수 없다. 어떤 비유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피부가 파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주인공 재일은 한국-베트남 국제결혼가정에서 파란 피부로 태어났다. 재일이 겪게 되는 일들이 재일이 파란 피부를 가졌기 때문인지,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불분명하게 뒤섞여있다. 재일을 바라보면서 나와 재일을 구분지을 수 있는지, 나는 어디에 속해있고 그건 어느 정도의 위치로 셈이 가능한지 짐작해본다. 재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듯,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장애를 가진 것과 다름없었다. 살가운 태도로 나를 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 행동에는 반드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약간의 자기만족이 섞여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음울한 기분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이유 없이 무시당했고 때로는 예고 없는 친절에 당황했다. p.24 "
은연중에 내 피부가 파랗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소설속의 재일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오늘 리뷰를 쓰기까지 연달아 보게 된 기사가 트렌스젠더가 여성부 운동 경기에 참가해서 순위권을 모두 차지했다는 것과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은근히, 하지만 노골적이고 전형적인 인종차별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남이고 북이고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버린 우리에게만 '역대급'인 무례가 저질러졌다. 시선을 사로잡은 기사들 안에서 나를 포함하고 있는 목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동시에 베트남인인 엄마가 피해자이고 상식적인 사람이고 한국인인 아빠가 가해자이고 몰상식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면모들이 불만스러웠다. 드러난 폭력성의 차이이지 상대방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 아닐까. 베트남에서는 정말 파란색과 상관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대비되는 구도를 위해 지나친 차이를 둔 설정이지 않았을까. 베트남 사람들도 파란 피부는 차별했을텐데, 결국 너를 버린건 엄마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네 몫의 생활비를 벌어오는 건 아내에게 배신당한 아빠일텐데, 넌 그런 아빠를 버리고 엄마를 찾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신부를 돈으로 사오는 국제결혼의 문제점에 대해 많이 접해왔으면서도 막상 국적으로 나눠지는 '편'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스스로를 검증하는 질문을 한다. 편견과 차별은 옳지 않다. 폭력과 범죄는 근절되어야 한다. 당연한 말로 여기고 있으면서 자신의 입장이나 이익에 따라 기우는 마음은 잡기 어렵다. 하지만 재일아, 클로이는 목숨을 잃었지만 넌 살아있잖아. 넌 남자잖아. 넌 영어를 할 수 있잖아. 넌 젊잖아. 같은 구분들을 만들어내는 스스로의 얄팍함이 느껴질 때마다 껄끄럽다.
불편한 부분들이 흥미를 자극했지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여지는 그대로 가져왔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런 점들이 전부 '멜라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으리라.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어둠이 내게는 안식처가 되었다. 빛이 없는 세상에는 색깔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이 검게 채색된 시간, 물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투명했다. 호수에 둥둥 떠 있으면 어둠은 정수리 위로 시커먼 입을 벌렸다. p170 "
" 나는 더 이상 백인을 우러르지도, 흑인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인간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나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터와 인간 관계에 지친 사람들, 애국심과 규율로 무장한 벙커에 숨어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p291 "
어둠안에서 안식처를 발견한 재일이, 그 안에서도 서로를 향한 공격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 작고 어린 파란색의 개인 p.291 "은 성장했다. 그리워했던 것에 품었던 환상만큼 버리고 떠나온 것에 대한 이해를 갖는 파란색의 존재가 되길.
단숨에 읽은 장편은 오랜만이다. 만연한 혐오가 피곤해질때 그것이 외부에서 나를 공격해오는게 맞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비워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자극이 되어줄 만하다. 책을 읽고 언젠가 파란 피부의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잠깐 생각해보자. 혹은 어느날 피부가 파란색이 되어버린 스스로는 어떨 것 같은지. 그 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었던가. 자신의 안에 점으로 뭉쳐진 '멜라닌' 덩어리를 마주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