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 - 이천 년을 내려온 나를 돌보는 철학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한슬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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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독서가들이 그렇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부분이나 의문이 생기는 곳에 표시를 해두거나 따로 메모를 하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엔 전에는 일일이 책갈피를 꼽아두기도 했는데 나중에 정리하며 떼는 것도 손이 많이 가고 표시 테잎도 낭비되는 것 같아 요즘은 핸드폰으로 그때그때 사진을 찍거나 따로 적어둔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면, '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를 읽으면서 표시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을 일일이 따로 남겨두려다 책의 모든 부분을 필사하는 것과 다름없어질 것 같아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 어떤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을 때 재미있을 것 같다, 취향에 맞을 것 같다는 가늠을 어느 정도 해보는데 예상을 뛰어넘어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읽는 내내 요즘말로 순살이 되도록 맞는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맞는 말만 아프게 때려넣어도 되는걸까. 읽다보면 이 문장에도 맞고, 저 문장에도 맞아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한숨을 쉬다가 이 정도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게 맞나, 나잇값은 하고 있나, 성인으로써 이대로 괜찮은가 끝없는 반성에 들어가게 된다.  


 " 자신조차 못한 일을 타인에게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찾는 행동은 우정이 아닙니다. 혼자서는 견디기 힘드니 타인에게 기대려는 행위일 뿐입니다. (23) "


 " 인간은 자기 재산을 넘보는 사람을 가만히 두고보지 못합니다. 누군가 자기 땅을 조금이라도 넘어오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돌을 들고 무기를 휘두릅니다. 하지만 타인이 자기 인생을 침범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심지어 인생 전체를 순순히 남의 손에 넘겨주기도 합니다. 단 몇 푼이라도 돈을 내어주는 일은 꺼리면서 삶을 내어주는 데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재산에는 인색하면서 시간을 나누는 데는 거리낌이 없으니, 정작 아껴야 할 것을 낭비하고 있는 꼴이 아닙니까? (24) "


 정말 책의 초반에 나오는 내용인데 벌써 뼈도 멘탈도 가루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SNS 줄이겠습니다. 타인의 평가에, 좋아요에 자아를 의탁하는 일희일비를 하지 않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싶어진다. 솔직히 제목은 '그럼에도 인생은 흐른다'고 이래도 저래도 지나갈 일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조금은 물렁한 느낌을 주는데, 반대로 내용은 맵다. 이천 년을 내려온 철학이 얼마나 '지금'에 반영될 수 있겠냐며 얕보았다가 이천 년동안 변치 않고 사람을 야무지게 패주는 던 경력에 압도되었다. 요즘 멘탈이 좀 풀렸다거나, 따끔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읽으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이 책이 고루한 소리만 늘어놓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부는 틀림없이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161)' 현실성도 잡고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다이다'는 농담을 진담과 다름없이 하는 요즘 세대가 봐도 공감할만한 어조다. 개인적으로 책장에 쌓인 책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책을 사서는 안 됩니다', '평생 동안 제목조차 다 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쌓아둔 서재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거대한 책 더미는 가르침이 아닌 부담을 줄 뿐입니다. (227)'는 내용도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책 사다놓고 안 읽는 사람'의 호칭을 정하는 글을 본 적 있는데, 그에 따르면 소장학파이자 책곰팡이인 입장에서 '비우기'를 실천하지 못한 미련이 또 한 번 들쑤셔졌다. 


 정말 공감되고, 마음을 후벼파는 내용이 많은 책이다. 겉표지나 제목을 보고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재미없을지도 몰라 선뜻 읽을 시도를 하기 어렵다면 부담을 내려놓아도 괜찮겠다. 각 장이 1~2 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짧게 되어 있어 생각보다 읽기 수월하고, 어조가 냉랭하여 자기계발서 같이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감이 없이 짧게 일침을 놔주는 느낌이다. 지금 다시 보니 표지에 '어느 철학자의 차가운 위로'라고 쓰여진 문구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염려를 내려놓고 가볍게 하루에 한두장 정도 읽으며 그날의 자기반성을 해봐도 좋겠다. 마음은 조금 괴롭지만 연말이 다가오며 느슨해진 정신에 기강 잡는 시간도 필요하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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