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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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치자 책장안에서 광고용으로 끼워넣은 듯한 작은 책자 하나가 보였다. 가끔 출판사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안내지를 끼워놓기도 하듯이. 책틈이 그대로 벌어질까봐 우선 그것부터 빼내었다. '낙원의 기억' 본편의 외전이었다. 10장도 채 안되어보이는 얇고 작은 외전이 따로 들어있다는 것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기왕 찾은 김에 그어둔 선을 하나 넘기로 했다. 외전부터 읽어보기로. 티코, 만우절, 학주가 이어지면서 김이 살짝 샜다. 오래된 유머와 더 오래된 풍경이 그려지는 듯한 전개였다. 마지막 한 줄로 그 전형적인 장면을 비틀어 내기 전까지는. 갑자기 본편의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외전을 먼저 읽는게 맞았을까? 마지막에 읽는게 맞았을까? 


 생각해보니 그 짧은 외전에 인물과 상황, 흐름이 충분히 그려지는 내용을 담아냈다는 것이 '낙원은 창백한 손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시작이 15년 전 사소한 하루의 풍경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린다. 문득 그저 유희거리에 불과한 뒷말이 15년의 감금과 복수로 이어지게 된 영화 '올드보이'가 떠오르며 기대감을 부풀린다. 이런 도입부를 만들어낸 저자에게 충분한 여백이 더 주어진다면 또 얼마나 탄탄한 세계를 표현했을까. 그런데 그게 스릴러라면?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설렐만한 작품의 등장이다. 


 " 둘 중 반드시 범인이 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죽어버렸으니까. (115)"


 살인사건이 벌어진 현재와 15년 전 민재, 도진, 이한, 서현, 윤석의 유쾌한 과거가 오가며 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궁금해지게 만든다. 강력반 형사인척 하며 호프집 사장을 속여 밀린 알바비를 받아내는 연극을 펼치던 패거리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15년이 지나고 난 뒤에도 계속 되는 죽음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흉흉한 소문이 도는 에덴 병원, 그곳에서 민재와 이한이 본 것은 무엇일까 점차 긴장감이 더해지며 내용에 몰입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굳이 그런 곳을 가보자고 나선 민재의 경솔함이 피곤했다. 공포영화를 보면 금기를 어겨서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역인데, 이런 역할이 없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겠지만 '굳이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부분은 다소 촌스러운 에피소드인 것 같지만, 장기자랑으로 핑클의 무대를 할 정도의 과거임을 감안하면 고증을 잘 한 것도 같다. 그 시절 감성이 정말 그랬던가 싶다. 초반에 흥미로웠던 흐름에 비해 뒤로 가면서 어떤 흐름이 이어질지 예상이 되기도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매력도 있다. 장편이지만 빠른 호흡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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