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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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마주의 책 표지를 보였을 때 누군가 제목이 왜 마주인지 물어왔다. 제목이 말의 주인으로 보일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 뒤로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계속해서 마주가 왜 마주일까 생각했다. 이래서 마주였을까 싶은 어림짐작만이 남은 지금, 그 안의 모든 것들이 과거에서 왔을까 코로나라는 팬데믹에서 왔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2023년이고, 사람들은 더 이상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고 다니지 않는다. 코로나가 남긴 상흔이 모두 지워진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일상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되찾은 일상 앞에서 마주를 읽으며 이게 정말 우리에게 있었던 현실이 맞았었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번호가 붙여져 격리되는 확진자, 대중앞에 공표되는 동선, 기피되고 비판받는 장소와 사람들. 잊고 있었던 것인지, 잊고 싶었던 것인지 모를 기억들을 마주하는게 편치 않았다.


 서로 마주하는 관계들 속에서 약간 무서움을 느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현미경으로 해부하는 듯한 적나라함, 왠지 모를 불편함을 빤히 바라보는 것 같은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남들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늘어놓는 장단점들, 다른 관계를 회피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고 다시 여자들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했다는 토로, 은채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엄마의 시선인, 나리의 말. 


 " 그애가 내 거였을 때, 십년 전 오늘에, 십이년 전 오늘에, 나는 아이가 어떤 눈으로 나를 보며 우는지 본 적이 있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면서 주문처럼 중얼거린 적이 있다. 크지 말라고. 여자아이가 되지 말고 내 아기로 있으라고. 나만 보라고. 

 소나무랑 소나기는 무슨 사이야, 엄마?

 이제 그애는 그런 걸 묻지 않는다.

 내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하지도 않는다.

 앞니가 흔들린다고 울지 않고, 쥬쥬기타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혼자 운다.

 여자아이가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운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문 너머에서 내 아이가 우는데, 나는 아이를 안지 못한다.

 어느 날은 생각한다.

 너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고 싶다.

 어느 날은 애걸한다.

 은채야, 나 좀 안아줘.

 어느 날은 홀로 사무친다.

 은채야, 사랑해! (163) "


 아이를 혼낼 때, 아이를 울리고 또 달래주는 것이 온전히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나리의 내면을 무섭게 여기다가도 커가는 아이가 자신에게서 멀어짐을 느끼는 섭섭함과 어쩔 수 없는 사랑을 안타까워 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문득 나도 언제부터 엄마, 하고 울지 않게 되었더라 생각한다. 내가 혼자 울던 때 내 엄마도 저렇게 나를 달래주고 싶었을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는 건 마음의 빗장을 쉽게 풀어낸다. 마냥 불편하게, 어색하게 마주를 읽다가 이내 마주가 좋아졌던 한순간이었다. 나리가 롯데월드 투썸에서 어색하게 여기던 수미를 받아들였던 것에도 그런 계기가 있었겠지 싶었다. 그러고나니 민들레가 심어졌을 비탈사과밭과 지금쯤이면 한창 빨갛게 익어갈 사과들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추석을 앞두고 어쩌면 딴산의 그이들이 벌써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가옥 앞 정자에 앉아 있으려니 여름에는 수박바가 제철이고 가을엔 바밤바가 제철이라면서 여자가 바밤바 세개를 가져왔다. (218) "


 나리가 만조 아줌마가 하는 말에 흐흐흑 웃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어쩐지 재밌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철지나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말들도 유독 인상깊고 재밌게 느껴지는 말들. 어쩌면 마주 안에서 봤던 어떤 말들보다 이 싱거운 말장난이 가장 오래도록 또 빈번히 여름과 가을에 떠올라 사용되겠다. 나는 마주를 코로나로 인한 혼란과 상흔보다도 이 가벼운 웃음과 사과밭 풍경으로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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