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온 아침과 저녁
한수산 지음 / &(앤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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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무렵 그가 겪어야 했던 고절과 영광 그리고 도피를 그는 상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썩어가고 있던 뉴욕에서의 나날, 침대에서 눈을 뜨는 아침마다 자신의 손목시계는 '상실. 상실. 상실.'하며 재깍거리고 있다고.(28) "

 

 이 감성을 내가 헤아릴 수 있을까 막연한 한계를 재보았다. 유럽에서도 울고, 호주에서도 앓는 섬세함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문장들은 조용히 나를 두드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으며 나는 참담히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어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 앞에서 한동안 멈춰서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가슴을 맴돌고 있는 상실이라는 소리를 혹시 모른척하고 있지 않을까.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귓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결국은 딸인지라, '딸이 떠난 방'이라는 부분을 한동안 읽었다. 책을 읽을 적에는 대부분 말이 없지만, 몇 페이지의 글을 읽으며 침묵했다는 것에 더 가까운 문장들이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다른 우주라는 말이 공감되지만 때로 나는 어떤 딸이었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없이 가깝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인 부모님과 나의 사이, 결국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사람사이의 거리에 대해 조금은 먹먹하게 읽어냈다. 선생과 같은 글재주는 없으실지라도 아버지로서 가지는 비슷한 마음이 아버지에게도 있지 않을까 가만히 가늠해보았다.

 

 " 나무를 심을 때마다 똑같은 생각을 한다. 이 나무는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의 햇살과 바람 속에 살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심은 나는 떠나도, 남아 있는 나무는 살아서 나를 그리워하려나.(215) "

 

 요즘 식물을 키우는 일에 관심이 생겨서, 비록 제대로 잘 키워내지 못하고 있어서 꽤 조바심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명을 들인 탓에 나무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키우고 있는 이 식물들이 사실 잘만 키운다면 나보다도 훨씬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이른 봄을 맞으라고 일찍 추위에 내놓는 바람에 냉해를 입어버렸다. 앞으로는 과연 내가 키울 수 있을까, 같은 비관적인 생각을 품지 않고, 저 문구처럼 더 오래도록 살아있으리라 하는 생각으로 식물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어찌되었든 가능한한 길게 살 것이란 마음으로.

 

 아주 길게 늘여 읽은 책이다. 금방 읽으려면 읽을수도 있었겠지만 한껏 게으르게 읽었다. 언제 읽어도 좋은 책장들 사이를 한가롭게 거닌 느낌이다. 꽃을 보러 갈 수 없는 봄날, 책으로 봄을 대신 맞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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