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잉홈
김정금 지음 / 델피노 / 2021년 3월
평점 :
주인공 필립이 자신의 의지로 과거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해에서 눈을 뜬 격이라 어떤 흐름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필립이 모르는 것은 철저히 독자도 모를 뿐더러, 어떤 때는 필립보다도 더 주어지는 정보가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으로는 이런 빈칸들이 흥미진진한 뒷 얘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필립과 정림은 왜 과거로 돌아가게 된 것일까? 과거로 돌아간 시간 여행자들은 어떻게 다시 원래의 삶을 돌아갈 수 있을까? 필립과 정림이 과거에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누가 그들이 찾는 밀정일까?
일제강점기 무렵의 근대로의 타임슬립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잉홈'의 등장이 꽤 반가울 것 같다. 상해와 동경, 경성을 오가는 과거의 배경과 누구도 믿을 수 없이, 작은 단서와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여,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평범한 남녀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는 300쪽이 넘는 내용을 순식간에 읽어버리게 만든다. '만약 과거로 간다면, 당신을 독립운동을 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로 시작한 '고잉홈'의 내용은 가끔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가끔은 너무 가볍기도 했다. 주제와 배경이 무거운데에 비해 가끔 내용의 짜임이 좀 헐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필립과 정림의 관계가 어떤식으로 깊어지는지, 또 필립이라는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 그 외의 인물들이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촘촘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우리 문화에 대한 중요성과 역사의식이 가장 뜨거운 화두로 솟아오르고 있는 요즘, '고잉홈'의 내용은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져준다. 필립의 모습을 보면서, 또 책 전반의 질문을 떠올리면서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지금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만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극장가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예매 1위를 하는 등 거세었던 불매 운동의 여파도 점차 옅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고잉홈'을 읽고나니 더욱더, 역사를 그리고 지금까지의 양국 관계를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 입장을 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