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현대 편 - 대공황의 판자촌에서IS의 출현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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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좋은 모임은 못되겠지만, 성공한 사람의 대단하고 반듯한 성공기를 듣는 것보다 실패한 사람의 그래서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는 바람에 이렇게 됐느냐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마음도 편하고 재밌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자, 여기 손. 쌤통의 심리학같은게 아니라 우리는 그저 성공한 사람의 '야, 너두 할 수 있어, 분명 나처럼 노력도 해야되고 운도 좋아야되고 환경도 비슷해야 되고 이런저런 요인이 있겠지만.' 을 내포하는 성공담의 은근한 부담을 느끼면서 희망을 찾기 보다는 '아, 이런 식으로도 실패를 하는구나. 실패해서 꼭 망하는 것만은 아니네, 혹은 내 실패는 저 정도에 비하면 내 속만 좀 쓰리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회복가능한 정도네.'하고 타산지석 삼기 위해서다. 솔직히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역사와 인물 얘기는 어린시절 위인전 읽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위인전 다 읽은 우리들은 흑역사로 세계를 읽는 눈을 길러보자.

 

 미리 밝히자면 이 책은 고대-근대 편과 현대편이 있다. 두 권 중 어떤게 더 재미있을까 그리고 깨알 상식을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서는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현대편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맙소사 두 책이 분리는 되어 있지만 번호는 연번이었다. 51번 흑역사부터 시작한다. 목차는 과감히 생략하고 펼치자 마자 초코칩쿠키 먹고 싶어지는 51번 흑역사를 마주하고 당황했다. 1번부터 50번은 어디갔죠? 잃어버린 번호들을 찾아서 앞으로 넘겨보니 뛰어넘었던 고대-근대편이 거기 있었다. 내용자체는 이어지는 부분이 없지만 번호가 이어지는 것이 영 신경쓰인다. 뭐든지 시작부터 차근차근히 해야 되서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만 풀다가 수포자 된 사람들은 착실히 고대-근대편부터 읽도록 하자. 거기에 1번과 근본이 있다.

 

 흑역사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단순 실수로 생겨난 사소한 발명같은 얘기나 권력층의 판단 오류가 불러온 대공황, 전쟁같은 끔찍한 비극도 다루고 있다. 우리가 흑역사라는 말을 지우고싶은 졸업사진이나 어린시절 치기어린 행동 같은데에 흔히 쓰기도 하고 가장 처음 나온 51번 흑역사가 '초코칩 쿠키'의 등장같은 내용이어서 대략, 냉면을 뽑으려다 기계를 잘못맞춰서 쫄면이 만들어졌네! 삼겹살을 자르려다 기계를 잘못맞춰서 대패삼겹살이 만들어졌네! 같은 은혜로운 흑역사의 세계 버젼이 좀 나오려나 싶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월드급 흑역사들은 스케일이 남달랐다. 대공황, 스탈린,히틀러... 그러니 각 번호마다 두어장 정도의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제에 따라서는 무게감도 함께 느껴지는 구성이다.

 

 외래산 유해종들 때문에 우리도 고생한 기억이 여럿 있고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미국에서 '칡'이 꽤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54번째 흑역사는 전에 인터넷에서 짧게 본 적이 있어 여기서 자세히 읽으니 더 재밌었다. 칡의 생존력이 강해 제거가 어렵고 다른 식물들을 타고 올라 죽이며 번져나간다는 얘기를 듣고난 뒤로 가끔 차를 타고 가다보면 덩쿨식물이 나무들을 타고 올라 뒤덮은 것을 볼 때 혹시 칡인가 염려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그런데 종종 거대한 칡 뿌리를 캤다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중년의 아저씨들과 인터넷에 칡만 쳐도 연관검색어로 칡의 효능과 요리법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염려가 쏙 들어가곤 한다. 특유의 묘한 맛을 지닌 칡차를 즐겨마시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우리 산림과 건강을 위해 칡을 먹읍시다.

 

 또 하나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 선한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는 95번 흑역사의 내용이다. 요즘 중국의 행보가 워낙 문제적이라 중국과 중국인이라고 하면 상종하고 싶지 않아지는데 95번 흑역사는 중국 내에서 입밖으로 내지 못할 '천안문 사태'를 담고 있다. 오늘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각한 수준까지 퍼져나갔다는 우려를 보았고, 일본에 이어 중국마저도 김치를 자신들의 식문화로 만들려하는 갖은 시도를 목격할 때마다 분노와 피로가 함께 쌓인다. 중국에 정말 선한 사람이 설 자리는 천안문 사태 때 사라진 것일까. 지금 중국의 이 파렴치한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인지, 언젠가 다시 의식있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흑역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도 많지만 자세한 내용을 매번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면 또 늘 새롭고 짜릿하고 재밌다. 살짝 똑똑해지는 그런 느낌. 지루하지 않게 또 한번에 꼭 흐름을 놓치지 않고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짧은 호흡으로 나눠읽기에 좋은 구성이기 때문에 여유 시간에 잡지를 보듯이 하나씩 읽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충분히 긴 방학동안 세계사에 관심도 불러일으켜 줄 겸 추천해주기에 좋은 책이다. 물론 어른이 읽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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