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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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은 '한순간에' 벌어진다. 차에 타고 있던 인원은 열한명, 그리고 개 한마리이다. 두 가족과 두 아이. 핀의 가족은 엄마와 아빠 둘째 언니 클로이, 클로이의 남자친구인 밴스, 그리고 핀의 동생 오즈. 엄마의 친한 친구인 캐런 이모네 가족은 밥 삼촌과 그 둘의 딸 내털리. 핀의 절친인 모런, 길에서 우연히 차를 태워주게 된 카일이라는 소년까지. 이 대인원이 탄 차가 추운 겨울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 사고로 앞좌석에 앉아 있던 아빠는 큰 부상을 입고, 핀은 죽는다. 소설은 핀의 영혼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고와 함께 닥친 조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진다.

 

 인물 관계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또 사람은 누구나 여러가지 면을 가지고 있듯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면 또 그렇다. 사고도 한순간이지만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하는 것도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계산으로 그리고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을 바라보며 과연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궁금함을 끝까지, 정말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가는 좋은 소설이었다. 독서모임 같은 것을 한다면 이 책 읽고 인물이며 상황이며 할 말이 진짜 많을 것 같다. 혼자 읽어서 누구랑 같이 애기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지금까지 공개된 북트레일러나 사건 초반의 줄거리만해도 많은 내용을 까고 시작하는 것이니 더이상 내용을 담지는 않겠지만 진짜 재밌다.

 

 요즘 흥한다는 사이다 마시는 속 시원한 만능 인물의 등장이나 사건 해결을 쭉쭉 밀고나가는 흐름은 아니다. 대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쪼이는 맛은 있다. 거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미묘한 심리 변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각도로 인물들을 평면적이지 않게 다뤄낸 작가의 신중함이 마음에 들 것이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의 말이 따로 있는데 꼭 그 부분까지 다 읽어야 한다. 그럼 이 책의 의미가 또 한번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은 책이었구나, 싶어진다.

 

 재미는 물론이고 요즘 계절에 잘 어울리기까지 한 책이다. '한순간에' 제목이 약간 강렬함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운데, 내용은 시작부터 한명 보내고 시작하는 화끈한 전개다. 영화 '투모로우'가 사실은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였으나 한국 사람은 모레라고 하고 하면 긴장감을 덜 느낀다고 해서 내일로 제목을 바꿔 나왔다는 영화 제목계의 전설같은 레전드가 내려오듯이 '한순간에'도 이름을 좀 더 강렬하게 지어서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는 이 제목이 주는 기대감보다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이다.

 

 책을 잡고는 밤을 새웠다.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길래 책의 두께를 보고는 한시간, 어쩌면 삼십분 정도만 읽으면 금방 다시 잠이 오겠지 싶어 책을 들었다가 그대로 다 읽고 아침이 됐다. 다시 잠이 오지 않을 전개로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고 눈은 피곤한데 궁금해서 계속해서 뒷장으로 시선을 넘기게 된다. '한순간에' 읽을 분들은 넉넉하게 여유있는 시간에 시작하길 바란다. 책이 꽤 두툼한 편이라 두시간은 훅 지나간다. 그날 하루정도는 독자를 집 안에 붙잡아 둘 흡입력이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조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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