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선택한 완벽한 삶
카밀 파간 지음, 공민희 옮김 / 달의시간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 "당신, 알았어?" "당연히 알지!"(19) "
 
 세상에,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과 남편과의 가정이 파탄났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이 이럴 수 있을까. 멀리서 보면 희극인가 싶은 비극적 순간의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막장과도 같은 시작에 정신이 쏙 빠진다. 게다가 톰에게도 고통스러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로맨스 소설 똥차 구남친 같은 적반하장 모먼트에 함께 분노하며 리비의 비극에 함께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감명깊게 본 '이 투 마마'의 멕시코 대신 만료된 여권과 환전이 필요없는 푸에르토리코를 향해 함께 떠났다.
 
 " "만회활 기회를 주지 않을래요? 당신에게 근사한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뭔지 맞춰보죠. 당신 바지 속에 들어있는 걸 말하는 거겠죠."(188) " 
 
 우리의 리비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그리고 날 웃긴 부분이다. 책은 술술 읽힌다. 하루아침에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고, 시한부나 다름 없는 악성 종양이 몸 안에서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리비의 행보는 거침없다. 화내고 울고 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쫓기듯이 움직인다. 전개가 빠르다보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답답한 부분은 없고 시원시원하다. 사이다 전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쏙 들어할 것 같은 흐름이다. 바로 벤츠같은 남자가 등장해서 밀당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로의 등장은 로맨스 소설의 도입부 느낌이 난다. 
 
 익숙하지만 실로 소름돋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나라면 상대방이 숨기고 있는 혹은 스스로도 정확히 규정하지 못한 성적취향을 가늠할 수 있을까. 리비가 톰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주변에게 알리자 그녀를 제외한 친구들은 시기가 늦던 빠르던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고 답한다. 얄미운 사람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알려주지 않아서 결혼까지 하게 뒀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누구도 말을 해줄 수는 없었을거란 생각도 든다. 솔직히 이제는 재연 상담 프로그램 같은데서 본 적 있는 흔한 소재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자극적으로 관심을 끈다.
 
 한참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리비는 나보다 어리고 그럼에도 병에 걸렸고 나는 건강검진 예약을 앞두고 있다는데에 생각이 미쳤다. 건강검진이라는 건 위내시경 같은 것 때문에 굶어야 한다는 게 고달프다는 것 말고도 이제 어쩐지 찜찜하다. 모든게 다 좋고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한동안 안심하겠지만 어디가 안좋아서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거나 경과를 지켜봐야한다고 나오면 그 뒤부터 어쩐지 몸이 진짜 안좋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혹시라도 진짜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도 섞여있다. 나의 불안과 함께 리비의 인생이 최악으로 끝나지만은 안길 바라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리비가 '죽음 앞에서 선택한 완벽한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결말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면 좋겠다. 시간을 한두시간쯤은 쉽게 없애줄만한 재밌고 시원시원한 전개의 책으로 길어진 저녁 시간을 보내는데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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