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읍니다
박정윤 지음 / 책과강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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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이렇게 추워지기 전 어느날이었다. 그날 오후는 유난히도 한가해서 대충 청소를 끝마친 거실 쇼파에 앉아서 환기를 하려고 열어둔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찬 바람을 쐬며 시간이 천천히 저녁으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녁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 갑자기 바람에 어느 집일지 모를 곳의 저녁 반찬 냄새가 섞여들어왔다. 별다를 것 없는 기름 냄새와 나물 양념 냄새같은 것들을 번갈아 맡으면서 문득 이상한 향수가 느껴졌다. 가정의 저녁 식사 준비 냄새라는 것을 내가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게 갑자기 그리워졌다. '밥을 짓읍니다' 도 그런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거나 채워줄 책이 아닐까 싶었다.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당신이 선택할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늘 먹었던 가정의 밥상이나 아주 고가의 맛있었던 음식을 꼽기도 하고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균일한 맛을 낸다는 체인점의 메뉴를 꼽기도 한다. 누군가의 선택은 공감이 될테고, 또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선택에는 각기 다른 취향과 이유가 있다. 음식은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몫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에 얽힌 이야기와 취향을 가지고 있을테다. 개인적으로 음식을 아주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탓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거기다 요리법도 함께 소개하고 있는 이 에세이를 꼭 읽어보고 싶었다.

 

 소소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읽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내 인생의 음식들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었다. 우선, 커피. 첫 직장에서 피곤함과 업무 피로가 쌓일 때마다 마시던 것이 시도때도 없이 네개의 샷이 들어가는 가장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에 샷을 더 추가한 독한 커피를 물 대신 들이켜게 될 정도가 되어버렸다. 속을 버리는 줄도 모르고 살려고 마셨던 커피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을 때는 커피를 사주었고,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선 항상 커피 냄새가 난다고까지 했다. 결국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건강과 정신적 피로로 첫직장을 그만두었는데 그것도 십년쯤 전이다. 얼마전 오랜 친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그애가 갑자기 벤티에 샷추가 좋아하지 않았냐고 물어와 오래 전 취향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에 놀라며 옛 기억이 떠올랐었다.

 

 커피에 별로 안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커피를 좋아하고, 그 시절 직장에서 어렵게 생각했던 선배와 커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두고 친밀한 대화를 나눴던 일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따로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서로 뭔가를 나눌 연결고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선배는 공들여 드립커피를 내리며 회사에 구비된 원두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법을 설명해주고 열심히 내린 그 커피를 나누어주었다. 그 커피는 같은 원두로 내가 내렸던 것보다 놀랄만큼 더 맛있었고, 그날 그 선배를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가끔 커피를 내려 마실때면 조금은 희미해진 기억으로 그날 그 선배를 떠올린다.    

 

 별 이야기 아니지만 이런 사소함이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요리법을 참고 하기 위해 따로 옮겨적어 보며 맛있는 독서를 하기 바란다. 더불어 자신의 음식과 이야기도 떠올려본다면 더더욱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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