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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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와 길을 잃은 것 같다, 연애.

 아, 연애...... 어떻게 하는 거였지? (53) "

 

 지금와서 연애얘길하면 조금 멋쩍은 시절이 되었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배우자분께 사랑한다고 한마디 해주세요', 하는 요청에 '사랑은 무슨' 이라며 손사래치는 모습이 잘 이해가 안됐는데 요즘은 조금 알 것도 같아졌다. 사랑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맞아맞아' 하기보다는 '그게 뭐 대수라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든다. 지금 이 사람, 이 감정, 이 순간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도 지나고보면 또 그게 전부는 아니었구나 할 수 있어지기도 한다고 알게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의 열정이 얼마쯤은 소진되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고민정의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박힌 문장이 바로 저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감성이 좀 바삭바삭해진 것 같아 수분 한 껏 머금은 누군가의 문장들로 촉촉하게 만들어볼까 싶은 생각이었다. 감성 충전, 이라는 말이 책으로 옮겨진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어쩐지 길어진 어스름이 마음에 걸리고, 차가운 바람이 몸이 아니라 마음까지 불어오는 것만 같은 계절에 외로움 쓸쓸함 따위의 마음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제목도 표지도 그렇고 싸늘해지는 가을날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가볍게 읽어볼 생각으로 시작했고, 감성에 젖은 소소한 문장들을 비는 시간에 틈틈히 조금씩 읽어나갔다. 그런데 저 문장을 마주하고 갑자기 내가 사랑이나 연애를 혹시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였지?'

 

 사실 저자가 참여한 '연애의 참견'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악명을 가끔 본 적이 있어서, 그런 사연들 속에서 헤쳐나온 사람이 꺼내드는 사랑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런데도 고민하고 있단 말이야? 또 사랑을 하고 싶단 말이야? 그게 왜 가능하지? 같은 의문을 던져주는 사랑의 연약함이나 부질없음을 말하는 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작가는 그 안에서 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니 의외였다. 오히려 사랑이나 연애라고 하는 것들을 피해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은데도. 저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만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그 '사랑'이란 것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찬찬히 읽으니 어떤 구석은 쓸쓸해도 전체적으로 마음이 한층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는 것도 같다.

 

 처음 받아들고 한번 책을 훑어보았을때, 이미나 작가의 '그 남자 그 여자'가 떠올랐다.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 아마 나와 같은 옛날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쯤을 관통했던 그 책을 기억할 것이다. '이소라의 음악도시' 라디오도 같이 떠올리겠지. 아무리도 '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의 저자도 작가이다보니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다면 고전급인 '그 남자 그 여자'도 찾아보면 취향에 맞을 것 같다. 반대로 그 시절 그 책을 읽었던 독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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