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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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마음에 든 책은 아니다. 젊은 작가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대략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성장팔이 글이라 생각했다. 초반에는 가끔 보이는 독특한 수식들도 툭툭 거슬리게 눈에 들어왔다. 착 붙는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읽다 도드라지는데 굳이 이런 표현을 썼을까, 이런 마음으로 까칠하게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을 뭐 대단히 풍요롭게 보낸 것이 아니라면 다들 조금씩은 공감할 법한 과거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것도 다 똑같고 정도는 달라도 비슷비슷한 것들을 느끼며 살겠지.

 

 초반내용은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려다 실패했나 싶게 먹먹한 내용들이 있다. 딱히 어렵게 자랐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봐도 평범하다 할 만하게 컸지만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몰라도 크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얼룩들이 있다. 거기에 새겨진 무늬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얼룩이었던 것들, 작고 희미해서 신경쓰이는데도 얼룩인지 몰랐던 것들, 어쩌다 받은 용돈으로 슈퍼에 가서 과자를 고를때 상자에 든 것보다 봉지과자를 고르게 되는 선택이나, 무한리필 집에 배부르고 만족했던 입맛, 제한된 취향 같은 것들을 꽤 솔직하게 드러냈다.

 

 자꾸만 먹는 부분을 집어내서 그렇지만, 외식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부분의 경험이 아주 비슷했다. 저자가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변화를 풀어내며 무엇이 변하게 된 것인지 되짚는 부분까지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는 거기서 더 나가 새로운 굴절을 느끼고 있는데, 괜찮은 식당에 방문하면서 생긴 씁쓸함이었다. 한끼에 십여만원 이상하는 음식점을 다녀오고 나면 그게 일상처럼 유지될 수 없다는 현실이 문득 마음을 잡아챈다. 그전에도 분명 더 좋고 나은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었을텐데, 그때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상하게 더 박탈감이 든다. 누군가에겐 일상이라는 점 때문일까,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갈수록 적어져서 그런걸까.

 

 계속해서 이렇게 씁쓸한 얘기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야동왕과의 첫키스 추억은 읽는 내가 민망할정도로 솔직하고 웃기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내용은 제일 재밌게 읽으면서도 읽기가 괴롭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감성수치때문인가. 쌍커풀 수술에 대한 내용도 공감이 많이 됐다. 한참 성형에 대해 말이 많을적에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며 억울해했던 저자와 달리 나는 수술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한쪽에 백만원씩 이백이나 들여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우스운 것은 대부분 했다고 하면 도리어 멈칫하며 안한거 같은데,하고 물러선다. 곤란하게 만들거나 놀리려고 했다가 당당하게 말하니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얼굴에 보이곤 했다.

 

 굳이 수술여부를 면전에서 물어보는 심보에 맞서 수술 맞다고 대답해주었다가, 나중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가 맞네 아니네 자기들끼리 입씨름하기도 하고, 도리어 안했는데 왜 했다고 소문내고 다니냐고 면박을 당하고 오는 일도 있었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지는 사람에게 내가 수술했다고 뒷말하고 다닌거냐고 물어보면 입을 다물었다. 무례하거나 뒷말하는 사람도 거르고 나름 속시원하게 멕이는 방법이었긴 했는데 이래서 예전에 알던 사람들 중 일부는 수술한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거라는게 문득 생각났다. 뭐 어떠랴.

 

 큰 기대없이 읽었지만 끝까지 재미있게 읽혀져서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책을 읽다가 아 친구가 이 책을 읽으면 재밌다고 생각하겠다 싶어졌다. 가을이니까 마땅히 책을 한 권 선물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리고 저자도 책을 통해 웹툰 미리보기 200원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으시길,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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