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아비투스란 생소한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이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몇 날카로운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우리의 아비투스와 가장 걸맞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질에 맞게 산다고 느낀다.(21) " 내가 가진 아비투스는 어떠하지? 이런 구분을 나누는 것이 과연 유용한 일일까? 현실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더 천박한 구분은 아닐까? 의문이 생겼다. " 그러나 동시에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자마자 기존의 아비투스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근본적으로 잘못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이 불안감을 만들고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새롭고 어색한 사회적 코드에 익숙해지려면 학습이 필요한데, 그런 걸 가르쳐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30) "

 

 하지만 사회적 계층에 대해 다루고 있다보니 흥미로운 내용도 많고, 직접 경험해보며 느꼈던 것들이 떠오르며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다. 새로운 사회적 코드를 알려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는 말에서, 우리가 처음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을때 느껴볼 법한 어색함이 생각났다. 이를테면 식기의 사용 순서와 방법 같은 것. 가장 기본적인 이 테이블 매너는 익숙해지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낯선 외국어로 쓰여진 메뉴판,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쥬 같은 것들은 쉽게 얻어지는 익숙함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책에 확 관심이 갔다.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의 카테고리 안에서 또 어떤 것들을 말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공감하고 얻어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안타깝게도 첫 심리자본의 내용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저자의 현실인식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은 급이 다르다'라고 말할 때,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급'이란 그 인물의 마음의 크기, 즉 '그릇'을 가리킨다.(39) " 사회적 차이일수도 있고 개인적인 오해일수도 있는데 '급'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흔히 연예인들을 말할때도 A급 탑급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이때는 마음의 크기를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비급 영화 같은 말이나, '너랑은 급이 달라'로 쓰이는 상투적인 드라마 대사에서도 급은 사회적 계층이 다르다는 말로 통용된다. 아비투스, 믿어도 되는걸까.

 

 문화자본 아비투스에 들어서면서부터 최근 지인과 나눴던 대화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만의 취향을 중요시 여기는 요즘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비투스에 나온 " 돈은 있지만 품격이 없다! / 취향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84) "는 맥락의 흐름은 소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편집숍에서 옷을 구매하고, 펜을 하나 사더라도 정해진 브랜드를 산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며 거리감을 느꼈었다. 다만 이런 소비 성향 차이는 계층의 구분도 될 수 있지만 세대별 차이로도 나눠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합리적인 젊은 소비층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소비의 폭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3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화 향유에 있어서 더이상 계층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최상층이 만들어 낸 신기루가 아닐까?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믿게끔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덜어낸 것이 아닐까? 틈새로 비어져나온 것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좋아보이는 것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것과 향유하는 것의 차이에 무뎌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딱히 고소득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고, 유기농 제품을 사용한다. 클래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조성진의 해외 공연 투어를 가기도 한다. 경계의 구분이 없다고 느껴지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확고한 구분이 만들어 낸 열망이 구분선이 흐렸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5장의 경제자본이었다. " 행복하지 않은 상황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돈이 없는 상황이다.(167) " 돈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이 나오기 때문에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흔히 나오는 말장난인 '젊을 때는 돈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나이들고보니 생각보다 돈이 더 최고였다' 식의 내용을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어 옮겨놓기도 했다. " 사람들은 가상 게임에서 게임 머니만 넉넉해져도 금세 태도가 바뀐다. 실생활에서는 오죽하겠는가.(173) " 같은 폴 피프의 실험 내용들도 그렇고 황금만능주의 사회의 민낯, 거기에 졸부의 천박함을 경계하고 찐부자의 고급스러운 생활 방식에 대한 찬양을 오히려 속물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외모'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는 신체자본에서도 계속된다.

 

 읽기 전에는 언어자본에 대해 가장 관심이 갔었다. "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240) "는 문장도 그렇고, 요즘 사회문제들이 거친 언어 생활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카운터시그널링'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인상적이었다. 성공한 사람의 겸손한 자세를 뜻하는 말(253)이라고 하는데,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말로 자신이 하버드 졸업생임을 드러낸다는 예시가 있었다. 예전 '검사외전'이라는 영화에서 강동원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관악구쪽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는 말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서울대학생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기꾼의 수법으로 나온 돌려말하기가 사실은 자신을 둘러 표현하기 위한 심리학 용어도 있는 화법이었다니.  

 

 책의 갖고 있는 이미지에 비해 재밌게 읽었다. 딱딱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내용들이 많았다. 계급 상승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통찰이 느껴지기 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구분들도 있었다. '최상층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최상층으로 구분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더 가치있고 좋은 것인지 의문도 가지게 된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며 읽어야 될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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