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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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들'을 읽으며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이 많았다. 도넛에 둘러싸여 죽은 소녀에 대해서 다치바나 히사노가 그녀와 얽힌 인물들을 한명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대화는 모두 소문의 소녀 기라 유우를 향한 내용이지만 작은 마을안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얽혀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연이 함께 드러난다. 소녀는 왜 죽었을까? 다치바나는 왜 소녀의 죽음에 대해 신경쓰는 걸까? 각자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일까? 서로의 조각을 하나씩 내밀어 제대로 된 그림을 맞춰보는 듯한 소설이었다.

 

 서로에 대한 악의가 오가는 대화를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저절로 불편해졌다. 과거의 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상대를 만나는 상황이 이어진다. 과거 다치바나가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 상처를 줬다면, 지금은 상대방이 품고 있던 과거의 불만을 다치바나를 향해 터트리며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이 끊임없이 과거의 일로 공격해오는데 그걸 넘겨버리는 다치바나의 태도를 보면 미인으로 살아남기에 익숙하게 보인다. 첫 남자친구였던 호리구치와 헤어지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면 나름대로 외모에 대한 강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들의 어린시절을 들어보면 '어린시절마저도' 외모가 주는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떠오른다. 일반론같겠지만,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상대방을 향해 더 가릴 것 없이 솔직하고 분명하게 태도를 보인다. 외모가 뛰어나거나, 성적이 좋거나, 집에서 잘 챙겨준 티가 나거나, 성격이 밝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선생님이 예뻐하거나 같은 조건이 그 시절 상대방을 점치는 기준이 되곤 한다. 많은 부분에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던 다치바나가 모두의 호감을 사면서 한편으로는 상처를 준 과거는 그런 권력관계에서 생겨난다.

 

 기라 유우의 죽음에 대해서보다 '외모'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그동안 자신이 자라온 세계에서 외모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나 자신은 외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것부터 사소한 에피소드들도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돼지나 땅꼬마 같은 말로 상대방을 놀리고 괴롭히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나, 살을 빼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해온 약 30여년의 시간들, 화장한 얼굴, 평범의 범주에 들어야 느낄 수 있는 안정감. 외모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읽어보면 생각이 복잡해질 것이다.

 

 계몽소설같은 내용은 아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니고, 내면의 성숙이 외향보다 무조건 우월하고 중요하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편향된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을 피로하고 만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젊은 시절에 가질 수 있던 아름다움은 반드시 사라지기 마련이고, 성형도 트렌드가 달라지듯 미의 기준도 유행을 따라 변화하는데, 외모에 대해 집착하게 되면 언제고 감당할 수 없어질 것이다. 특히 외모에 대한 강박은 자기 자신을 끝없이 파고들어 검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무섭고, 그 지점을 잘 파고들고 있는 책이다.

 

 미나토 가나에게 처음으로 쓴 미용에 대한 심리 미스터리는 눈, 코, 입, 다리, 허리, 가슴, 엉덩이, 얼굴크기, 머릿결, 피부, 모공의 크기까지 신체의 모든 조각들이 부위별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느끼는 피로와 부담이 엿보이는 내용이었다. 여름을 맞아 다이어트를 하는데 지쳤다면, 어딘가로 떠날 수 없는 휴가를 앞두고 성형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외모에 대한 강박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면, '조각들'이 좀 더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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