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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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르르한 외로운 불빛 하나가 문 틈새로 빠져나와 미지의 인물이 지도를 조금 낮게, 하지만 너무 낮지는 않게 달아준 벽의 빈 공간을 비춘다. "보르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릿마리는 어둠 속 의자에 앉아서 맨 처음 그 지도와 사랑에 빠진 계기가 된 빨간 점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그 점이 바로 그녀가 지도를 사랑하는 이유다. 해져서 반만 남았고 빨간색은 빛이 바랬다. 그래도 하단의 좌측과 중앙의 중간쯤에 붙어 있고, 그 옆엔 이렇게 적혀 있다. '현재 위치.' 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186) "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분명 여자는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지 못한다는 켄트의 말에 반발심을 품고 읽기 시작했지만, 브릿마리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딱딱하고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브릿마리의 일방적인 소통은 보고있기 괴로웠다. 편집증적인 청소에 대한 집착도 그녀에 대한 경계를 한층 쌓아올렸다. 정리된 침구와 커트러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두와 속해있으나 거리를 유지하는 테라스를 사랑하는 나이 든 여자. 처음엔 보르그의 사람들이 왜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쥐덫을 놓아 쥐를 없애는 대신 저녁 식사에 쥐를 초대하는 사람이라서? 농담으로 지인과 비둘이, 고양이에게 밥주는 사람들은 있는데 왜 쥐에게 밥주는 찍맘/찍대디는 없냐는 얘기를 한 적 있는데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릿마리'를 읽어서 절묘했다.

 

 쥐에게 밥을 주는 일은 아무리해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천천히 브릿마리가 좋아진다. 그녀가 서툴렀을 뿐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와 만나 달라지듯이 그녀도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브릿마리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렸다.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고여있던 두 세계가 만나 서로를 변화시킨다는 내용은 언제나 어떻게든 매력적이라 그것 또한 좋아하기 때문에 결국은 브릿마리도 즐겁게 읽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시스터 액트' 같은 영화도 비슷한 흐름아닌가 싶다. 카지노 삼류 가수가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좋아하는 이유는 뜻밖의 조합이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과정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흐뭇해지고 절로 고양되는 느낌 때문이아닐까 생각한다.

 

 문득 '청소'라는 것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궁금해졌다. 브릿마리 뿐 아니라 떠오른 모든 작품 안에서 '청소'는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의 더러워진 옷을 빨아준 것, 머리를 정돈해준 것, 부엌을 치우고 커트러리를 정리해준 것, 거실을 청소해준 것은 거대한 우울증 덩어리같은 마을 보르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시스터 액트'에서도 들로리스를 받아들인 이후에 폐쇄적이었던 수녀원이 문을 열고 낙후된 동네를 청소하며 변화하는 모습이 나온다. '바그다드 카페'에서도 야스민이 브랜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무실과 카페를 청소한다. 청소는 곧 변화의 계기가 된다.

 

 이들 책과 영화는 청소와 정리가 필요한 환경을 통해 어딘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상황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 바탕을 둔 요소였다. 저장강박이나 청소를 하지 않고 집을 방치해두는 것이 우울증 증세 중 하나라고 했던가, 청소하지 않고 쓰레기를 잔뜩 쌓아놓고 사는 사람은 그저 게으르거나 불결한 성향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인 질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 있다.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변화가 청소, 주변 정리,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틀 안에서 시작됨이 공통적으로 보이는게 흥미롭다. 87년, 93년의 영화에서도 이런 점을 파악해서 '청소'라는 장면을 넣었던 것일까?

 

 거기다 브릿마리를 보면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생활리듬을 유지하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자기관리가 잘 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비슷한 인물을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라는 책에서 만난 적 있다. 캄보디아에서 원더랜드라는 호텔을 운영하는 고복희씨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물은 아니지만, 청결에 누구보다도 신경쓰고, 항상 정돈된 모습을 유지한다. 좋은 생활 태도에 좋은 정신이 깃든다는 꽉 막힌 말이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의 머리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거나, 어찌할 수 없는 진리에 가 그리고 그녀와 닿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를 즐겁게 읽었다면 아마 고복희씨를 만나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된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을 네번째 만나게 된 것 같은데,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을 거쳐 하키에 대해 얼마나 열을 올리며 썼는지 기억나서 "얼마 되지 않는 하키 관련 지식을 근거로 판단하건대 온 우주를 통틀어 축구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몇 안 되는 운동 가운데 하나가 하키이기 때문이다.(175)"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보며 웃었다. 하키와 축구에 대해 이렇게 긴 소설을 써냈으면서 이렇게 표현한다는 점이 재밌다. 읽다보면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들이 테러리스트하고는 협상을 하면 안 된다고 못을 박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167)" 같이 웃긴 건 아닌데, 실소가 나올만한 문장들을 적절히 넣어놓은 점이 매력있었다.

 

 초반 브릿마리와 어색한 시간을 지나보내고 나면 순식간에 끝까지 읽게 된다. 켄트와 스벤 사이에서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장면도 좋았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당신이길 기대한다는 스벤의 말도 꽤 로맨틱했다. 한번쯤은 문을 두드려보고 싶었다는 브릿마리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브릿마리가 끝내 혼자서 이케아 가구를 조립해낸 것처럼 그녀의 노크를 기다리는 두 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묘하게도 그녀의 '현재 위치'가 더이상 되어주지 않을 것 같은 장소들 사이에서 어떤 결말을 읽게 될 것인지 끝까지 궁금해하며 읽었다. 이쯤되면 그녀를 브릿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을 옮겨놓는다. 

 

 " 모든 결혼 생활에 단점이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살다보면 그 사람의 약점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약점들을 무거운 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걸 피해가며 청소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환상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 먼지가 쌓이겠지만 손님들 모르게 지나갈 수 있기만 하면 참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허락도 없이 가구를 옮겨버리면 모든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먼지와 긁힌 자국. 쪽매널 마루에 영원히 남은 흠집. 하지만 그쯤 되면 이미 되돌릴 방법이 없다.(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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