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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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했다. 생각해본 적 없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 반가웠다. 아는 것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시선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작품을 만나면 마음이 들썩인다. 작가 이름을 다시 잘 살펴봤다. 언제고 이 이름으로 다른 책이 나왔을때 놓치지 않고 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를 때는 막연히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인물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그동안 봐왔던 심리와는 결이 달랐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타인에게 참 무례하구나, 삶이 계속된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구나 싶었다. 누구에게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내내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 책속의 원이를 보면 그 생각을 풀어내는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십팔년 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너. 그때의 너를 떠올린다. 원이를 읽으면서 너를 겹쳐보는 일이 멈춰지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버텼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이렇게 또 너를 떠올려도 괜찮을까, 너 뿐만 아니라 모든 불운한 사고를 겪어낸 사람들은 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는걸까. 그런데 그때는 나도 어렸고, 이런걸 몰랐었다. 알았더라면 어쩌면 너에게 '마스터 키'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제고 끌어올려진다는 것, 인터넷에 박제된 얼굴로 남아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들은 인터넷 안의 기록물로 남아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참 끔찍하게 여겨진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그날을 품고, 너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이제는 이런 생각조차 다시는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유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보다, 어쩌면 그게 가장 예의바른 태도일지 모른다는. 사진 속에 남은 익숙한 얼굴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기억하니. 우리 잊자, 하고.

 

 내가 떠올리는 과거의 일과는 별개로 소설 속 원이가 겪은 화재는 몇년 전 의정부에서 발생한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사건들도 많았을텐데, 왜일까 읽다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그러다 문득 작가는 어떻게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까. 왜,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다 읽고 난 뒤에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은 이야기는 오랜만이다. 언제고 이 질문들의 답을 들을 수 있는 작가의 말을 읽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기왕이면 창비의 계간지에서 백온유의 인터뷰를 보게 된다면 좋겠다. 

 

 종종 청소년 소설을 찾아읽고는 하는데, 청소년 소설을 읽을때면 다른 소설들을 읽었을 때보다 더 자주 감동을 받는다. 정신연령이 청소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아니면 청소년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같은 것- 계몽소설같은 의미전달이 취향을 저격하는 걸까, 그 애틋한 한뼘이 성장하는 순간들이 마음을 울린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뒷면에 쓰인 '위저드 베이커리, 완득이, 아몬드'를 잇는 소설이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몬드'만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유원'이 이들을 잇는 소설이라면 기꺼이 '아몬드'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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