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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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었다.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라는 소개가 있어서 문득 우리집 강아지를 떠올렸었다. 남들이 보기엔 개겠지만 내 눈에는 언제나 강아지인 그애를 떠올린 것도 반쯤은 장난스러운 연결이지만 나름 의미는 있었다. 종족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하니 문득 집에 들어설 때마다 그애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가움으로 나를 맞아주는 것, 사랑스러운 보드라운 털이나 따뜻한 온기, 약간 흙이 묻은 냄새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곁에 앉아 놀아주면서 정성껏 손이나 팔을 핥아주는 신뢰 가득한 보살핌을 받고 있자면, 그만큼의 애정으로 얠 보살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종족을 초월한 가족을 두었으니, '세계의 끝과 시작은'에 공감하며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확실히 묘한 접점이 되기는 했다.   

 

 처음 책을 봤을 때 요즘은 이런 표지 스타일을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제목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눈에 확 들어왔다. 밤하늘과 달, 소녀의 뒷모습이 감성적 코드를 점철해놓은 것처럼 보여도 도입부의 모든 주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치'라 다 읽고 나서 보는 표지는 또 새롭다. 처음엔 표지와 제목만으로도 감성이 울렁울렁해지는 느낌이라 소년과 소녀가 만나서 이어지는 청춘물의 미묘한 느낌이 더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어린 소년이었던 도노가 9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동안 성인으로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버리는 바람에 풋풋말랑한 감성이 아니라 좀 음침능글한 기운이 많아졌다. 풋풋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도 수상해진다. 흡혈종이라는 이종족을 설정해두고 조금씩 건네지는 정보를 모아 인물들에 대해 파악해보는 재미도 크다. 증거로 생각했던 장면이 단서가 되기도 하고,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한 부분에 통로가 있기도 했다. 적당히 추측도 하고 헷갈렸다가 확신하기도 하면서 읽었다. 연쇄적인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기는 해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겁지 않아 적당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감성 미스터리'라는 말에 신파로 가려나 싶은 느낌도 있었는데, 어찌됐든 보편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전개도 좋았다. 식스센스급 반전이라고 할만큼의 놀람은 아니어도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다 마주칠 수 있는 귀여운 고양이나 괜찮은 카페, 뜻밖의 풍경을 만나는 의외성이 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가장 놀랍고 무서운 부분은 도노가 11살 때 딱 한 번 만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9년동안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해왔다는 것이다. 11살에 첫사랑이라니 조숙하기도 하고, 한번 본 상대의 예쁜 외모를 그림으로 복기해올만큼 집착적인데다가, 다시 만난 첫사랑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미성년의 외모일텐데도 거리낌없이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흡혈종이나 헌터나 다른 내용은 다 깔끔하게 받아들였는데도 아카리의 외모가, 외모만일 뿐이지만 미성년 상태일거라는 점이 내 마음 속 유일한 브레이크가 되었다. 도노는 한국이라면 군대갔을법한 시기의 성인인데, 그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음...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전개상 인물들의 외모가 다 준수하게 묘사되는 편이라 대학에 가도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수상쩍은 동아리 활동 같은 건 없어, 다 거짓말이야, 같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언젠가 영화같은 영상매체로 나온다면 기대되겠구나 싶었다. 늘 물감을 묻히고 있는 이젤 앞의 미녀,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미남, 인기많고 엉뚱한 매력의 미녀와 함께 적당한 평범남이 아름다운 모습의 기억 속 첫사랑 소녀와 처참한 현장의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이라니. 주인공이 적당한 평범남으로 표현되는데다가 유일한 걸림돌이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끝까지 신경쓴듯한 마무리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개가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읽기 시작하니 끝까지 쭉 책장을 넘기게 된다. 언제고 도노, 아야메, 사쿠, 지나쓰가 얽힌 이야기를 한 편 더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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