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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시툰 : 너무 애쓰지 말고 ㅣ 마음 시툰
앵무 지음, 박성우 시 선정 / 창비교육 / 2020년 5월
평점 :
휴덕도 탈덕처럼 했다. 십대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은 조금 너무 갔고, 절반정도는 만화였다. 만화가 성적에는 큰 도움이 안될지 몰라도 사는데는 도움이 좀 됐다. 만화 많이 본 사람을 알거다. 부모님은 질색하실지 몰라도, 어떤 것들은 솔직히 별로 좋지 않을지 몰라도, 만화도 나름 전문적인 지식도 담고 있고, 문학작품처럼 인물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그걸 전공지식과 문학작품으로 채운다면 더 좋겠지만, 만화는 재밌으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까...? 누가 오덕 아니랄까봐 만화 예찬을 하는가 싶겠지만, 사회에 만연한 만화 경시 풍조 때문에 만화를 보면서도 만화를 낮추어 생각했었나보다. '너무 애쓰지 말고'를 두고 시툰이라고 해서 좀 가벼운 내용이겠거니 지레 짐작했었다.
표지에 '서툰 마음을 토닥이는 다정한 위로, 마음 시툰'이라고 써 있어서 시 몇편이 소개되어 있고, 짤막한 글귀랑 함께 내용에 맞춰서 그림이 조금 들어가 있으려나 싶었다. 그럼 소진된 세대들을 위한 '-해도 괜찮아' 하는 몇몇 에세이들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거기에 시가 같이 소개되는 것만으로도 좀 더 낫겠지 싶어서 저녁에 문득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애쓰지 말고'는 내 생각과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었고, 또 내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이라 금새 빠져들어 읽었다. 만화라서 내용이 좀 가벼울거라고 짐작했던 것이 짧은 생각이었구나 싶었다.
사장님과 보혜의 인물설정이 너무 차이가 커서 오히려 두사람의 합이 맞는 모습을 보는게 재밌었다. " 사업은 수익을 내는 게 절대 목표 (68)" 라고 생각하는 보혜가 너무 귀엽고, 답 없는 것 같이 있어도 자기 주관대로 살고 있는 영길 사장도 좋다. 다만 부모님이 강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공통점이 아쉽다. 기성세대와 부모님에게 악역을 그것도 전형적인 갈등 형태로 전부 맡겨버리다니. 다른 편에서는 이 갈등이 해소되는 내용이 더 나오려나? 소개되는 시의 범위도 넓다. 시조도 나오고, 교과서에서 봤던 시인들의 시도 포함되어 있어 영 낯선 세계로 초대되지는 않는다. 덧붙여서 배경이 되는 공간이 재즈 카페니까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재즈도 소개해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읽다가 이런 책을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안녕, 해태'라는 책이 떠올랐다. 청소년 마음 시툰이란 꼬리표를 달고 나온 책이었는데 만화 속 큰 이야기 틀 안에 시가 스며들어 있는 내용이 '너무 애쓰지 말고'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책장으로 가서 살펴보니 싱고 작가의 '안녕, 해태'도 창비*에서 출간한 책이었다. 시가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고, 또 어른이들을 위한 책으로도 나오니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시를 더 가깝에 끌어오도록 창비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게다가 둘 다 만화 내용도 재밌고, 함께 읽을 수 있는 시들도 좋다. *창비교육
시툰이라는게 어쩌면 어색할지도 모르지만, 또 처음에 내가 오해했던 것처럼 가볍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막상 접해보면 이 콜라보를 꽤 환영하게 될 것이다. 출간 전에 창비에서 운영하고 있는 SNS나 블로그 등을 통해 연재를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웹툰을 보고 웹툰이 출간되면 독자들이 책으로도 구매하는 것처럼. 읽는동안 즐겁고 어떤 부분에서는 내용과 시가 함께 어우려져 마음에 와닿는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진다. 만화 좋아하는 독자와 시 좋아하는 독자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