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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뒤에서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어쩌다 읽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은 한참동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탁자 한켠에 놓아둔 읽을 책들의 목록 안에서 몇번이나 순서가 밀렸다. 쌓아뒀던 책들도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몇권 남지 않았는데, 다른 책을 먼저 읽었다가 몇장 읽지 않고 그만두고 오늘 그냥 갑자기 '문 뒤에서'를 먼저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집중이 안될 것 같아 조금 읽다가 재미없으면 정말 그만 둬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정말 솔직하게.
원어로 책을 읽어도 그럴까. 번역되어 나온 책을 보면 가끔 특유의 꾸밈, 묘사가 좀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벌써 젊은이였고, 젊은이처럼 비쿠냐 원단의 긴 회색 바지에 다른 옷에 비해 색조가 무거운 직물 재킷을 입고, 호주머니에 열 개비짜리 마케도니아 담뱃갑을 넣고, 목에는 실크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27)" 같은 어딘지 어색한 문장이 그렇다. 주인공이 사춘기이고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 신경질적임을 견디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미 책의 중반에 와 있고 그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지 계속해서 궁금해졌다. 분량 자체가 160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책이긴 하지만 초반의 어수선함, 바탕 다지기같은 작업이 지나고 나면 확 재미있어져서 순식간에 읽게 된다. 끝까지 관통하는 '문 뒤에서'라는 제목의 의미와 함께 내용의 여운도 깊게 남는다. 성석제의 '첫사랑'을 보는 것 같기도하고, 이 또래에 흔히 있을 법한 현실감을 잘 살렸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한 막장 소재들도 넘쳐나는 와중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화인처럼 찍힌 그날'이라는 문구는 좀 애매했다. 이런 일이 얼마나 흔하냐면, 싸이시절에도 그랬지만 아직도 SNS 저격글이란 이름으로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문구를 만들어놓은 사진들이 10대들에게는 유행처럼 돌아다닌단다. '너 호박씨 까는거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어쩌고 하는 내용으로. 친군줄 알았는데 내 뒷 얘기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는 상처가 흔하긴하지만 어쨌든 당하면 속은 상할 사건이긴 하겠다.
솔직히 말하면 숙제를 같이 하는 그룹이니 초대니 하는 말들 때문에, 주인공이 게이인가, 혹은 저 동네 애들은 저렇게 좀 끈끈하게 친구관계를 만드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었다. 오텔로라는 친구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냐고 떠보듯 물어보는 것도, 또 그의 덩치에 의지했다는 표현도 그랬다. 풀가가 카톨리카들 앞에서 말했을 때도 그렇고. 애초에 둘이 숙제를 핑계로 딴짓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저게 진짜로 그렇게 된다고?' 싶은 도시전설의 발견이었다. 남자들의 우정이 원래 그런 것이란 말이야......? '첫사랑'의 서양 버전 같다.
카톨리카의 행동도 이해못할 것이 상처주고 싶었던 걸까, 진짜 갑자기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갑자기 왜? 둔한 중년의 감성이 기민하게 눈치채지 못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무슨 심리들인 것이지 대체. 사춘기처럼 예민하던 시절에는 이런 글을 읽으면 인과관계가 보일 듯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성질급한 한국인이 되어서 혹은 좀 무덤덤한 둔치가 되어서 그런지 '왜 저렇게 행동하지'싶은 의문만 남는다. 누가 설명해줬음 좋겠다. 어쨌든 짧고 재밌다. 무슨 내용일지 몰라 미뤄뒀었는데 진작에 후딱 읽어치울걸, 싶었다. 조르조 바사니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