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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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삶'이라는 말을 보고 떠올린 것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청소년기 정도였을까, 어떤 책에서 항상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그런다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그렇구나 넘기는 편이어서 딱히 이건 왜 이런거냐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던터라 그 책을 읽고는 또, '아, 그럼 나는 성공하기는 어렵겠구나'하고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상처도 좀 받고,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앙심도 좀 품었다. 도무지 하늘이 왜 파란지 궁금하지도 않고,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하늘은 예쁘고 닭도 계란도 맛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성공하지는 못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으니 지금와서는 조금 분하기는 해도 저자 나름의 어떤 통찰이 있었나보구나 짐작해볼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세월의 때를 타고 보니 예전에는 없던 의문이 조금씩 생겼다. 일을 하면서는 저 사람은 왜 일을 저렇게 하는가 싶기도 하고, 회사의 업무 체계는 누가 뭐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서 일개미를 고문하는가 분노에 가까운 의문도 품었다. 뉴스로 인면수심의 범죄 소식을 들을 때면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귀신은 뭘하길래 바빠서 저런 사람은 안 잡아가나 궁금했다. 그러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나니 지금껏 그저 남들 하는만큼은 한다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도 궁금해졌다. 이런 질문들은 사실 딱히 답은 없고 생각할수록 마음만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리 생산적이지 않아 생각하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만다. 좋은 질문은 뭘까. 나는 정말 질문을 못하는, 그래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럼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 '천년의 수업'을 통해 어떤 질문이 성공하는 좋은 질문일까 접해보고 싶었다.

 

 책의 초반에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꿈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아주 오랫동안 꿈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고, 또 나이들고서는 꿈이야 어릴 적 이야기지 싶은 마음에 나이듦을 이유로 꿈을 가질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꿈이 뭐냐고 물어오면 변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에는 꿈을 직업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날 작문 주제로도, 중고등학교 진로조사용지의 빈칸을 채우면서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이 주는 이미지만 가져다가 심지어 제대로 된 방향성도 잡지 않고 그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꿈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책에 나오는 대기업에 취업한 여자분(50)의 이야기가 영 남일 같지 않은건 그 때문이다. 직업이 꿈이 되면, 여러 이유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꿈도 같이 잃게 되는걸까? 그게 꿈이 맞을까?

 

 이때 나온 이야기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나 결핍과 욕망까지도 연결되는데 어쩐지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꿈꾸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은 결핍을 느낄 때 생기는 것(250)이라 하니, '(꿈은) 결핍에서 온다(47)'는 양면성이 보였다. 저자는 이런 결핍, 고통, 열악함 같은 것들이 인생을 더 흥미진진하고 멋진 이야기로 만들어 줄 것이라 위로한다. 완벽한 주인공이 역경 하나 없이 성공하는 이야기를 보면 '하나도 재미가 없(146)'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먼치킨 주인공이 나와서 다 쎄고 다 이겨버리는 고구마없는 내용의 판타지물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게 대리만족이라는 걸까. (...) 나는 내 인생의 주연(142)이고 획일화 된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못했다고 자존감을 깎아가며 이번 생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몇번이고 깨달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복잡했던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와 서양 철학이 접목된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보는 고전' 시리즈 세대지 그리스로마 신화 세대가 아니라 아무래도 신화 흐름에 빠삭하지 않아서 더 그랬다. 단어 하나를 가지고도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더 오래걸렸구나 싶었던게 '인간다움(93)'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 '서양에서 말하는 '인간다움'과는 조금 다른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에 가까웠고 그 차이가 와닿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몇몇 실험을 통해 본 적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도 '남들하는만큼 하며 살아왔다'는 표현처럼 관계망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는 것(94)'로 여겨왔다는 점이 재밌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양 철학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복잡할 수 밖에 없었고.  

 

 솔직히 어떻게하면 만족스럽게 살까, 무엇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질문들 안에서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공감을 많이 하지 못했다. 작은 목표와 희망에 기대를 걸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길어져서 그런지 책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이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졌다. 도리어 꼭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명성이나 후대의 평가(119)'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을 살아내기도 벅찬 시대에 그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의 예시들은 멀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저는 후대에 뭘 남기지 않아도 그냥 소소하게 맛있는 것이나 먹고 좋은 경치나 좀 보고 그렇게 살면 족합니다,하고 움츠러든다. 순응하는 삶,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들여진 것일까. 값싼 위로나 건네는 흔한 책들이 질린다고 해놓고 그 이상을 보라하면 자꾸만 '안될거야'하고 외면하게 된다.

 

 '천년의 수업'을 읽기 전까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글을 몇 개 읽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있어(210) 경제나 기술 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자의 눈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짧지만 관심있게 읽었다. '인문학은 들어설 틈이 없어 보(210)'인다는 표현에 조금 웃었다. 바로 그 전까지 나도 앞으로 내가 구할 수 있는 범위의 직업들은 제일 먼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벌어졌던 저자와의 거리가 다들 이런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싶은 마음에 좀 줄어들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말을 하건, 앞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떤 교육을 통해 인간을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지에 대해서는 기술을 손에 쥔 쪽의 일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가장 기대하면 읽은 부분은 여덟번째 주제였다. 제목도 무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한가(243)'라니,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내가 맞고 네가 틀린 세상에, 가끔은 나 자신도 이해가 안가는데 말이다. 혐오가 넘쳐 극혐이니 00충이니 하는 표현이 예사로 쓰이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이건 과잉된 부정이 아닌가 싶어졌다. 쉽게 쓰이는 만큼 혐오에 길들여지는 느낌이라 의식적으로 덜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집단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면 힘들수록 혐오가 더 쉽고 빨리 그 자리를 차지한다. 크게는 사이비 종교, 범죄자 인권, 일부 정치인들에서 작게는 층간소음, 길거리 흡연 같은 것들 마저도. 이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고,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때가 있겠지만 배려, 양보, 이해같은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정말 모르겠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 차례를 훑어봤을때 조금 고루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질문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 기대됐었다. 처음 지리하게 써놨던 나의 질문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같은 것도 결국은 '천년의 수업'의 9가지 질문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나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가능할까' 등의 주제 안에 녹아있는 면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받침이 되었다. 어떤 것들은 부드러운 어조 아래에서 다 채워지지 않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지만, 나와는 다르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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