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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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속이 복잡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와 나 자신이 얽힌 이야기를 끌어오고 싶지 않다.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또 고통스러운 이야기기 때문에 굳이 풀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보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비교도 하고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도 됐었다. 책을 읽으며 했던 생각들을 전부 꺼내어 둘수는 없을 것 같아 이리저리 잘라내다 보니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남아있지 않았다. 풀어낼 수 없는 말들이 쌓여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차라리 밝고 희망찬 얘기로 채워져있는 소설들이라면 좋았을 것을. 얼마 전 읽은 '씨씨 허니컷 구하기'는 할머니와 소녀가 나오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나의 할머니에게'를 읽고 기분이 좀 묵직해졌다면 '씨씨 허니컷 구하기'가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싶다.

 

 남아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유한함을 절감한 뒤로는 항상 남은 시간들이 간절해졌다. 그래서인지 손보미 작가의 '위대한 유산'에서 1918년에 태어나 1972년에 죽은 할아버지(108)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리 단명한 것은 아니라고 적혀있어 눈을 의심했다. 환갑에 미치지 못하게 50여년 남짓 살았다는 것인데, 짧지 않은가. 시대가 시대니만큼 평균수명이 지금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짧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두고 얼마나 더 살았어야 할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었을까(108) 생각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정해진 기간이 없었으리라 생각도 되고, 어찌되었건 떠난 사람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같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 밖에는 없을텐데 왜 그리 차게 썼을까 싶었다.

 

 가장 좋았던 글은 백수린 작가의 ' 흑설탕 캔디'였다. 다른 부분들이 비터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흑설탕 캔디'는 이름답게 스윗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인 박난실 할머니와 프랑스인 브뤼니에 할아버지의 연애담인데 열일곱 첫사랑의 마음을 간직한 노년의 조심스러운 풋사랑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확실히 다시 읽어봐도 나이만 다를 뿐이지 닿을 듯 말 듯한 감성을 그대로 가진 첫사랑 이야기와 다름없다. 때로 나이는 먹어가는데 철은 안드는 것 같아 더 나이를 먹고서도 언제까지나 마음은 이렇게 어른이 되질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할 때가 있었는데, 난실씨가 브뤼니에씨를 만나 떠올린 생각들이 마음에 박혔다. 지금의 나도 상상하지 못했었지만, 노년의 나는 어떨까, 늙지 않은 마음을 부여잡고 노인인척 살아가게 될까. 

 

 '위대한 유산'은 스릴러 분위기가 났고, '선베드'는 할머니에 대해서라기 보다는 불안정한 진서에게 더 관심이 갔다. 어찌되었든, 친구가 없고 가끔은 선을 지키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은 혼자 남겨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진서의 모습에서 나와 주변의 닮은 점들을 발견했다. 이쯤되니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멀어진 친구들도 많아지고,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인연들을 어떤 사소한 실수로라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과잉되고 불안정해보이는 진서지만 이상하게 그녀에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할머니에게'에서 가장 솔직히, 마음에 들었던 글은 윤성희 작가의 작가 노트 (35) 내용이었다. 그냥 거기에는 진짜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은, 진짜.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손녀를 앞에 두고 화투점을 치거나 민화투를 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꿈을 꾸게 만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존재성을 전면에 내세운 첫 소설집'이라는 띄지 문구가 눈에 띈다. 뭘 그렇게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파과'에서도 할머니 킬러가 나오질 않는가. 어쨌든 '나의 할머니에게'는 기획이나 디자인이 신선했다. 여섯명의 작가들이 할머니를 주제로 각기 펼쳐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도, 무엇보다 표지의 묘한 질감이, 중간중간 끼워진 갈피를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조이스 진의 그림들마저 남달랐다. 다만 첫 소설집인지라 '할머니'라는 주제를 통해 작가들이 그려낸 내용이 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쉬웠다. 첫 소설집이니까 두번째나 세번째가 혹시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 책이 더 나오게 된다면 이보다는 좀 자유로운, 혹은 넓은 시선으로 '여자 어른'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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