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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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에는 저자에게 신이라도 내렸던가 싶었다. 코로나 19와 유사한 배경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쓸 생각을 했을까. 40년만의 잭팟이 터지다니. 그리고 중국의 어느 미친 과학자가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우한에서 바이러스를... 하는 음모론도 떠올렸다. 세상에 그렇지 않고서야 지역까지 콕 찝어 우한일 수가 있단 말인가. 책에서는 염력도 나오고 그러니 나의 음모론도 영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막상 책을 손에 들고 나니 묵직한 두께감에 이걸 언제 다 읽나 걱정이 됐다. 하루이틀 덮어둔 책을 쏘다보다가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니, 순식간이었다. 술술 읽혀서 1/4 정도 읽었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었다. 많아보였던 분량이 아무것도 아니게 생각됐다. 무엇보다 재밌었다. 단지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내용이 있다는 점만으로 역주행을 할 수 있었던 책은 아니었다.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위한 머리싸움이 필요없이 몰입해서 읽으면 될 뿐이었다.

 

 초반에 깔리는 으스스한 내용이 공포물인가 싶을 정도로 긴장감을 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막힌 구석 하나 없는 빠른 사건 전개를 시원시원하게 따라가면서 오는 기분 좋은 스릴만 남는다. 계속 무서우면 밤에 불을 켜고 자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크리스티나가 악몽을 꾸는 부분들은 먼 옛날 즐겨읽었던 '퇴마록'의 한 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심약한 이를 마음 졸이게 했던 그 유명한 책의 국내편에 '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 * 의 내용이었다. 아마 추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다소 허무맹랑한 설정이라 여길만한 부분들은 있지만, 그래도 매력이 더 많은 책이다. 강점 중 하나는 인물이었다. 책 속의 인물들이 복잡하거나 이중적인 면 없이 선악이 잘 드러났다는 점이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저 단순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준다. 각 인물들에 맞는 결말을 갖게하는 권선징악적 구조도 좋았다. 세상이 험한데 소설 속에서라도 나쁜놈은 죗값을 치뤄야 제 맛. 주인공인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점도 40년이 지나서도 수동적이지 않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  

 

 다만 꽤 마음에 들었던 시원시원한 전개는 장점이면서도 약점이었다.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에 누구 한명이 말도 안되는 방해꾼 역을 해서 일을 꼬거나 하면 답답해서 하차하고 싶은 성질머리를 가졌는데, 이를테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상황에서 안전한 쉘터에 잘 피해있는데 밖에서 누가 문 열어달랜다고 문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대체 왜 문을 열어주는가, 문 열어주면 꼭 감염자 한명이 딸려 들어와서 다 죽던데 영화도 안보나 싶은 울화가 치밀어서 그만보고 싶어지는데- 그런 전개가 없다.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시원시원하다면 찾아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너무 시원시원하게 단 4일만에 거대비밀기관의 프로젝트를 다 파헤쳐버리는 과정이 아쉽기도 했다. 대니 없었으면 어쩔 뻔 봤는가. 모든 시작과 끝이 대니에서 대니에게로였다. 크리스티나와 엘리엇은 이용당했다!가 학계의 정설. 그리고 빠른 전개와 마무리가 어떤지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이왕 분량이 400쪽을 훌쩍 넘길 것이면 500쪽이 넘든 600쪽이 돼서 두권이 되든 확실한 마무리를 보여줬어도 될텐데. 뒷심이 부족하다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궁금함이었던 우한 폐렴에 대한 내용이야 큰 비중이 없이 흘러가듯 언급됐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로빈 쿡의 '돌연변이'라는 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 책도 책장이 어찌 넘어가는지 모를만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니 '어둠의 눈'을 재밌게 읽었다면 구해서 읽어봐도 좋겠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었는데 기대 이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동안 읽어 볼 교양서로 추천해본다.

 

*바흐 칸타타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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