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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평점 :
"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고 우리 부모님을 죽게 만든 게 하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벌을 주려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려고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는 루스 이모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과 일련의 사건뿐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는, 엄마가 지진을 피해 살아남은 뒤 30년이 지나 결국은 퀘이크 호수에서 익사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무슨 교훈이 있는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이 주신 교훈이 아니다. 오히려 퍼즐 조각을 맞춰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끊임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작아지고 투명해져서 그 생각들로부터 숨고 싶고 멀어지고 싶었다. (63) "
뭐가 이렇게 복잡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1989년, 90년대 초라는 배경은 지금하고 얼마나 다른걸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주변에 이해받기까지는 사실 지금도 그때와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건 아닐까.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말이다. 간단할 일도 아니지만 캐머런은 모든 일을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만들고만 있는 것 같았다. 왜 조금 더 교묘하게 굴지 못하는거지, 십대는 원래 그런가. 십대가 어떤지를 이해하기에는 또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90년대가 지나가버린 것만큼, 멀리.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가장 먼저 생각해봤다. 나 역시도 캐머런처럼 숨기거나 참지를 못했을까. 서로를 다 아는 작은 동네에서 산다면 그 안에서 나와 키스를 할만한 첫사랑 상대를 찾아 짝사랑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무언가를 절대 티내지는 못했으리라. 작은 동네와 소문이 주는 타격이 얼마나 큰지 사춘기무렵에는 잘 알법했다. 그래서 금방 자신이 사랑할만한 여자애를 찾아 헤매는 캐머런의 행동이 불안하고 답답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몬태나의 마일스시티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익명의 레즈비언으로 살 수 있는 도시로 나갈 수 있을텐데. 그럼 어려운 길이라도 좀 더 쉬운 방법으로 갈 수 있을텐데.
왜 이렇게까지 숨기려 하냐면, 십대시절 내가 만났던 과거의 캐머런들을 떠올려보았기 때문이다. 그애들이 '진짜'로 동성애자였든 한때의 호기심이었든,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인다면 확실히 소문은 잘 퍼져나갔다. 사실 그 당시의 아이들이 '조금만' 기미를 보였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십대였을 적에는 그애들 특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재밌는 점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캐머런의 동네보다 훨씬 더 동성애에 대해 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랬어도 그애들은(그들 스스로가 부러 그런 차림을 하고 다님에도) 충분히 소문에 민감해하고 괴로워도 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는 한때의 치기로 덮으려하는 쪽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서툴고 예민한 시기에 가질만한 고민은 가능한 숨겨두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내 생각도 어느새 굳은 편견덩어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염려라는 것으로 잘 숨겨둔. 하지만 굳이 가장 아프고 괴로운 길로 십대를 지나가는 모습은 그리 보고싶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따라왔던 불안의 꼬리표는, 얄궂게도 1권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 터져나온다. 모든 원인이 서툴기만한 소녀 캐머런에게 붙어서,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의 캐머런이 조금이라도 더 뻔뻔했다면 상황은 이렇게 흐르지 않았을텐데, 그날 6월 말의 그때 캐머런이 부모님을 잃지 않았더라면 내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만약들을 떠올려본다. 이제 막 중반부에 들어선 1권의 끝에서 2권부터는 전보다 더한 괴로운 분량이 진행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기까지 캐머런이 처하게 될 상황이 어떨까. 문득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가 떠올랐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십대, 정체성, 여름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영원한 여름'이라는 대만 영화가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읽으면서는 '바비를 위한 기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두 영화 모두 괜찮은 퀴어 영화이니,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읽으면서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캐머런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날이 바비보다는 빨리 오는 결말이 있기를 바라며 2권을 기다린다.
p243 마지막 줄 노쳐녀-노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