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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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후아나의 꾸무럭한 날씨를 떠올려본다. 테라스 밖으로 멀리 보이던 바다 물결이 빛날때 돌고래가 튀어올랐다고 믿었던 날이, 건조하고 더운 바람, 길거리의 개들, 페인트 칠이 된 건물들, 아주 젊었던 시간에 그 곳이 있었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에서 티후아나를 만나는 건 반가웠다. 미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호시탐탐 국경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진 철조망 같은 것, 싱코 이 디에스의 보니따 플라자 같은 것들이 잊고 있었던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마음을 때려오는 그리움이 가득 밀려왔다. 언젠가 꼭 한번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읽으면서 반가웠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킨다면, 멕시코는 괜찮은 곳이었다.

 

 티후아나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은 주말이면 긴 줄을 이룬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지만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일일이 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빅 엔젤의 가족들이 멕시코와 미국을 오가며 살아온 역사에는 이 국경 사이의 예민함이 드러나 있다. 말뚝과 펜스가 쳐져있던 티후아나의 바닷가에서 '넘어가고 싶으면 수영을 해서 가면 되겠네'하던 물음에 그 생각때문에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미국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빅 엔젤이 자신에게 얼마나 프라이드를 가졌을지 이해가 됐다.

 

 멕시코에서 죽음이란 무엇일까. 처음 멕시코에 갔을 때 시장의 상점에서 가장 많이 본 것들이 해골 모양을 한 장식품들과 피냐타였다. 죽음, 죽은자를 연상시키는 해골 모양의 장식품들과 파티에 빠지지 않는 피냐타 인형이 함께 걸려있는 상점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전혀 어둡거나 엄숙하지 않게 화려하게 장식된 해골들이 참 독특했다. 그곳에서는 삶과 죽음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 같아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며 참 멕시코스럽다고 생각됐다.(당연하게도!) 장례식과 생일 잔치를 앞 둔 이 가족의 이야기는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죽음, 삶, 가족. 어울리지 않는 저 단어들은 사실 인생이란 테두리 안에서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이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이 먹을수록 절감한다. 그것은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 가혹하다. 어릴 적에는 내가 뭐든지 할 수 있게 나이를 먹고 성숙해가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는데, 내가 클수록 자라오며 의지했던 부모님이 점점 불안해지고,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간 것이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빨리 자라서 그들도 이렇게 빨리 늙어간 것이 아닐까. 책 속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온 빅 엔젤이 늙고 병들어 페를라와 미니에게 몸을 의지하여 목욕을 하는 장면이 있다. "미안하다. 다 미안해.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309)" 핸드폰 조작법을 몇번이나 다시 알려드릴때 부모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닐까. 

 

 언젠가 우리에게 모두 마지막 토요일이 올 것이다. 항상 그것이 아주 먼 후의 일이라고 자신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실제로 그 날이 언제일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하느님 제기랄! 주님, 죄송합니다.(150)"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읽으면서 영화 '코코'를 떠올렸다. 영화에서는 '죽은자의 날'을 배경으로 하는데, 가족을 중요시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특유의 문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내용이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우리가 멕시코에 대해 갖는 이미지나 멕시코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주로 갱단에 관한 무섭고 암울한 내용이 많지만, 멕시코는 아름답고 멋진 나라다. 멕시코에 가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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