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세계사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마크 포사이스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젊을적에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어찌됐든 성인의 특권같아 보이는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얻어지는 방종도 좋았다. 약간 이성을 놓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즐기는 술자리는 퍽 재밌기도 하니까. 언제부턴가 술이 주는 매력보다 다음날의 숙취가 더 크게 고려되고, 술자리에서 느끼는 재미가 때로 실수로 이어지고 공허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요즘의 솔직한 마음으로는, 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다.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한 세계사를 읽어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술이 궁금했다.

 

 술로 인해 들려오는 사건과 사고 소식들은 너무나 많고, 그에 대한 처벌은 약하다. '술 때문에'라는 핑계는 왜, 어떻게 이유가 될까? '술에 취해서 심신미약이었기 때문'이란 이유로 낮은 처벌을 받는데, 사회는 왜 술에 관대할까? 같은 의문들과 함께 사람은 왜 술을 취할때까지 마실까? 왜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같은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이 궁금증들이 '술에 취한 세계사'를 읽도록 만들었다. 정말 '인간은 술꾼으로 진화했'을까? 자신은 만취에 대해 모른다고 운을 떼고선 바로 다음장에 '런던 캠던 타운의 집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십자가를 흔들어대면서 행인들에게 회개하라고 한 적'이 있다는 문장을 쓰는 자의 술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으며 읽을 수 있을까? 혹시 글을 쓰는 도중에도 술을 마신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저것이 만취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복잡한 마음을 안고 책을 읽었다.   

 

 책은 술의 기원부터 살핀다. 여기서는 누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가를 주제로 동물과 술에 대해서도 나온다. 동물들도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읽다보니 최근 술에 취한 라쿤의 동영상을 본 것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길에 버려둔 술을 마신 모양인데, 만취한 라쿤이 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확실히 우습고 귀여웠다. 책에서는 동물이 술을 진탕 마시는 일은 드물다고 했는데, 이 라쿤은 어쩐 일인지 만취한 것이었다. 좀 더 찾아보니, 동영상의 술취한 라쿤은 경찰에 잡혀간 뒤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모처럼의 동심이 파괴되는 결말이 술꾼의 최후같아서 씁쓸했다.

 

 불행한 라쿤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술과 여성의 역사에도 매춘, 난교, 구토 같은 말들이 따라붙는다. 처음 가졌던 흥미에 대해 달가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새끼돼지 값으로 치뤄지는 매춘이나 구토, 난교 함께 버무려진 이집트인들의 술문화, 수메르의 술집 여주인, 바이킹의 연회에서 여성 역할은 술을 따르는/제공하는 것이었다는 내용들은 음지의 술문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는 진을 마시는 여성들을 비방하는 글을 쓰는 영국 신사들의 등장과 점잖은 여성은 살룬에 가지 않는다는 서부시대의 불문율과 함께 살룬 아가씨라는 직업의 등장이 소개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문화권에서 술이 자연스럽게 여자와 성에 얽혀 있는 역사를 보여주는데 하나같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아보였다.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역사 속의 술문화는 로마의 콘비비움이었다. 술자리의 좌석배치도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손님의 중요도를 차갑게 평가해놓은 이 무례한 술자리는 심지어 바닥을 기어야 하는 노예들을 부리고, 노예의 가치를 무려 외모로 평가하기까지 한다. 손님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는 앉은 자리와 그들을 접대한 노예의 외모, 제공받는 술의 품질에서까지 드러난다. 예의와 상식은 어디 먼 곳으로 보내버린 것만 같은 과거의 문화는 주인이 차별대우에 분노한 손님의 칼날을 맞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앞서 본 술의 역사들이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에 금주를 시도한 역사들도 나온다. 이슬람교에서 금주령을 내리니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라키는 술이 아니니까, 원료가 다르니까 같은 핑계를 대고 술을 마시려고 한다. 아즈텍에서는 풀케를 마시고 취한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지만 술을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마시면 죽는다고 하더라도 술을 기어코 마시려는 사람들의 의지는 그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유로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미성년 시절에 술을 마셔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처럼. 개인적으로 평소 술을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술은 백해무익하니 금주령을 내리자는 급진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주와 관련된 내용을 읽다 이건 어렵겠구나 싶었다. 술이 가진 유구한 역사와 큰 팬층을 떠올리면,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인간의 것이기 때문인지 술과 인간이 맺어온 관계는 과거와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보였다. 취하고 즐기고 토하고 욕망을 분출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또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고대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맨정신으로 만취자들의 술자리에 참석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흥미롭지만, 왜 저러는건지 이해가 안되는 문화도 많았다. '술에 취한 세계사'를 통해 다양한 역사를 접할 수 있어 유익했지만 내용이 정돈된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역사 속에서 겹치는 내용들이 나오니 시간의 순서에 얽매이기 보다는 술에 취한 인간과 동물, 술 문화, 술과 여성, 금주령 같은 주제로 묶어 내용을 끌어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사람은 왜 술을 마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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