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냄새
박윤선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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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에 여름이면 수영장에 갔다. 가서 수영을 배운 것은 아니고 그저 물을 휘다니며 놀았을 뿐이라, 아직도 수영은 커녕 잠수도 못한다. 수영을 배우러 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수영장엘 자주 갔냐하면, 그때는 그랬다. 동네 아이들끼리 서로 이름을 불러가며 '노올자'하고선 오늘은 앞산으로 오늘은 수영장엘 오늘은 골목에서 이리저리 어울려 놀았다. '수영장의 냄새'를 보고선 그때의 물의 일렁임, 수영장에서 놀고 나면 꼭 먹었던 컵라면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수영장의 냄새'에 그런 유년의 반짝임이 담겨있는걸까 생각했는데, 들여다 본 물속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그때의 자신을 '국민학교 이학년'으로 소개한 것으로 보아 어린시절이 나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때였던 것 같았는데 민선의 세계는 성숙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 나는 어떤 집에서 사는지 신경이나 썼던가, 싶었다. 분식집 가서 밥도 혼자 잘 사먹고 학원엘 가는 모습이며, 꽤 조숙한 관계망을 보며 민선이는 혹시 서울에서 살았던걸까 싶어졌다. 서울 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조금 있나보다.

 

 아홉살 무렵에 있던 일을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일학년 때까지는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를 가느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학년은 그런 기억도 없다. 다만 시험을 잘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랬다. 일학년 때는 학교를 다닌다는 것에 적응하느라 시험같은 것을 봤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그 무렵에 남들보다 잘 못한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의 기억이 난다. 민선이 수영장엘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공감됐다. 지금은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게 창피하고 싫었다.

 

 흔히 어린시절에 겪은 일들은 금방 잊거나, 잘 이해하지 못해 상처가 덜할거라 생각하는데 때로 어떤 상처들은 온 시간을 들여 깊게 자리잡는다. 민선이는 신발을 버린 일, 친구들과 병원 놀이를 한 일들도 상처로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흘러 인경이가 전학 간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됐을 때 그때도 상처를 받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저질렀던 잘못들을 떠올려본다. 정말 잘못이 잘못인줄 모르고 행동했을까, 그때도 사실 아주 조금은 하면 안되는 행동에 대한 구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볼 때 저렇게 어린애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생각을 했을까 싶은 사건들이 나온다. 아이라서 어른과 같은 생각을 기준으로 행동을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겪고 싶지 않을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정말 잘잘못을 몰라서 장난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생각이 미친다. 그 아이들이 모방하는 세계가 더욱 나빠지지 않기만을 소망하게 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까, 같은 비관적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 들려오는 점점 더 나쁜 소식들에 지칠 때면.

 

 아직도 수영장에서는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이 날까? 얼마 전 수원을 갔다 길을 걷던 중 작은 수영장이 있는 센터를 들렀다. 센터 안에 수영장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디선가 물비린내 같은 것이 나서 인공폭포 같은 것이 있나, 목욕탕이 있나 싶어 둘러보니 레인이 몇 개 안되는 수영장이 있었다. 최근에는 호텔의 수영장 같은 곳 말고는 가본 적이 없어 관념 속의 수영장 다운 수영장을 본것이 오랫만이었었다. 여전히 그곳에는 수영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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