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정나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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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 안 서로를 다 아는 작은 동네 출신인 나는 길을 따라 죽 늘어선 가게와 옆집들이 싫었다. 내가 집근처에서 부모님의 눈을 피해 할 수 있을만한 행동들은 단지 부모님의 눈을 피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대문의 누구네 집 몇째인지, 내가 몇학년까지 겨울이면 내복바람으로 집 밖으로 뛰어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는지 골목은 부모님이 아는만큼 알고 있었다. 관찰자의 눈으로 그리고 좀 더 냉정한 판단자의 눈으로. 사춘기가 지나고 더이상 외출복을 챙겨입지 않고는 집 밖으로 심부름조차 나가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오는 일조차 너무나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더라도 골목에는 나를 아는 눈이 있었다. 몇 해 전 길끝에 달아놓은 씨씨티비같은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씨씨티비는 침묵하지만 골목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아는 골목이 싫었다.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지금 가끔 마주치는 옆집 사람들의 얼굴도 매번 잊는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설 때 길이 겹치면 어색하게 못본 척 하다가 마침내 옆집 사람인 것을 눈치채면 인사를 꾸벅 나누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단지 입구의 편의점도, 가끔 가는 세탁소 주인 내외조차 늘 짜놓은듯 비슷한 태도로 나를 손님으로 맞는다. 하물며 대형 커피 체인 역시 자주 드나들고 몇시간동안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이런저런 볼일을 볼 때도 있지만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늘 선택하는 메뉴가 무엇인지 굳이 기억해주지 않아도 좋다. 그날그날 내가 고를테니. 형식적인 인사, 정해진 서비스, 완벽한 타인의 관계. 그런 것들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대도시의 삶이, 익명성이, 무관심이, 어쩌다 우리가 연결된다 하더라도 일회성에 지나지 않는 그것이 나에게 잘 맞는 서비스였다. 그래서 '오래된 작은 가게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만약 길에서 내가 넘어진다면, 누군가 다가와 팽개쳐진 소지품을 챙겨주고 '괜찮으세요?' 물어보며 엎어진 날 일으켜준다면 고마울 것이다. 하지만 지치고 피곤한 날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찾아간 카페에서 나를 알아보며 '오늘 피곤해보이시네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더 피곤해질 것이다. 반사적으로 미소를 짓고 '아니 괜찮아요'나 '그래보이나요' 같은 대답을 의무적으로 남기며 또 한번의 작은 사회생활을 할 것이다. 나는 그저 조용히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제 3의 공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고 싶을 뿐인데. 이런 내가 냉정한 걸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일을 거부하고, 더 잘해줄 필요도, 한마디 더 나눌 일도 없이, 돈을 내고 정해진 서비스를 받는 일만 하고 싶다고 하면 각박한 세상을 만드는 요즘 사람인걸까.

 

 사실 나름 서비스업을 해봤던 탓에 가게와 손님의 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른다. 분명 저자처럼 내가 자신을 기억해주었을때 더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손님도 있었다. 접대용 미소나 사소한 일들을 떠올려 말을 건네면 건조한 분위기가 좀 풀어지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손님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때로 그것들은 의무나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특히나 친절할 것, 돈을 내기 때문에 그에 맞는 혹은 그 이상의 배려를 해줄 것을 기대하는 인식을 가진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면 감정노동으로 연결되는 '인간적인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싫어진다. 만약 작은 가게에 바라는 것에 그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렇기 때문에 더 좋다"가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좋다면 몰라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품을 법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에 뉴스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서점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는 것을 보았다. 영세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지난 12월에 도입된 제도로 2024년 10월까지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제한한다고 한다. 그 취지도, 서점이 첫 대상이 됐다는 소식도, 여러모로 눈에 띄는 뉴스였다. 학교 앞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마다 한두개씩 있었던 작은 서점들이 없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대형 서점들이 생겨나면서 이런 작은 가게들이 없어지고 거품처럼 땅값이 오르고 상권이 순식간에 번성했다 망해버리는, 자영업자들의 생업과 직결된 문제를 이미 잘 알고 있다. 동네에서 유명했던 서점들이 하나둘 없어질 적에는 나도 씁쓸했다. 그럼에도 문득, 안그래도 독서인구가 낮아지고 있는 때에 오히려 시장을 더 줄이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닌지가 먼저 떠오른다. 

 

 작은 상권을 위한 파이를 보호하는 일을 두고 오히려 접근성의 문제를 걱정한 자신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내가 너무 각박한 생각을 갖고 있나 의식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SNS를 하고, 개성있는 이벤트를 열고,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내세운 색을 선보이고, 지역의 다른 시설들과 협력하는 일들로 작은 상권을 보호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것들이 독특하고 힙하다는 이유로 사랑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것마저도 '00단길'이라는 획일적 이름붙이기에 휩쓸려 유행처럼 번져가는 한계가 아쉽지만. 작은 가게가 좋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책에서 늘어놓은 것처럼 감성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문제로 분석하는 시선이 같이 있었다면 좀 더 공감하며 읽었을 것 같다.

 

 인간적으로 친밀하고 사소한 친절을 베푸는 개성있는 작은 가게들, 분명 좋다. 매력있다. 하지만 읽을수록 나랑은 취향이 좀 다른 것 같아 아쉬웠다. 책의 내용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자가 보여주었던 쌀국수집 '저스트포'의 친절함이나 '투스토리 커피하우스'의 배려, 추천인을 적는 칸이 있는 치과에서 안심하고 치료를 받았던 개인적인 체험들과 같이 나는 내가 경험한 일들이 얽혀 나온 결과가 조금 달랐을 뿐이다. '단골 대접 같은 것은 필요 없으니 저에게 말 놓지 마세요. 오늘 얼굴이 어때 보이는지 말해주지 마세요. 요 며칠 얼굴을 못 본 것 같다고 혹은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사적인 건 물어보지 마세요.' 따위의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인간미없다고 생각하지 말길. 그저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 세대일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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