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효재 - 대한민국 여성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박정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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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효재'라는 네글자 이름을 보고 묘한 느낌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에 반대하는 경우에 보통 한마디씩 하곤 한다. 십여년 쯤 전에도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확 일었는데 그때 흔히 들었던 말이 책에도 있었다. 아버지 성 *과 어머니 성 *을 합치면 이상한 조합이 된다,나 성이 두개인 이름이 되면 세대가 이어질수록 이름이 길어지겠다,는 농담섞인 야유였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여성 운동의 길은 멀고도 길다는 것이 실감됐다. 사실 이이효재 선생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양친의 성을 모두 붙인 이름이란 걸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그래서 마치 호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는데, 부모 성 함께 쓰기를 한 것이라는 걸 알고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일들도 이렇게 걸림돌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번졌다.

 

 이이효재 선생의 전 생애를 걸쳐 어떤 생각을 갖고 삶을 살아왔는지 천천히 보여준다. 여성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써왔던 탓에 이이효재 선생의 일생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변화해왔는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만 평전/전기와 비슷한 형식이라 페미니즘에 대한 강조가 좀 덜하고 위인전을 읽는 듯한 느낌이 더 크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두 아우르고 있어 더욱 그렇다. 여성 인권이나 평등 사상 같은 것이 전무하다시피 한 시기를 시작으로 하기 때문에 선생이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시작점이 재밌었다.  " 이약신의 부모는 조상들의 제사를 아무리 열심히 지내도 앞서 태어난 아들 셋이 일찍 죽는 것을 보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p.35 " 조부모님의 남아선호-아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에 상처가 나면서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불신을 품게 된 것이다. 요즘에도 제사/차례 문화를 두고 '조상덕 본 사람들은 제사 안지내고 명절에 해외여행 나가는데 덕 못 본 사람들만 제사 지내다 집안 분란 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선생이 미국 앨라배마로 1948년에 유학을 떠났다는 것은 여성의 유학이라는 점보다 그곳이 보수적인 남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 놀라웠다.  " 효재의 유학 생활은 단순히 공부에 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몇 세기의 문화적 갭을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까지 더해졌다. 미국 내에서도 흑백 차별이 유별나게 심한 남부 앨라배마여서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많은 학생들 중에 흑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느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p.70 " 책에서도 나왔듯이 인종차별이 심한 곳인데 흑인보다 더 차별받는 동양인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때 동양인이 유학을 가서 생활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대학에 흑인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음을 다소 아쉽게 드러냈는데,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하는 마음의 방패를 조금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와중에 영어를 못해서 다른 과목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한국에서는 잘 못 했던 수학성적이 괜찮게 나왔다는 내용도 너무나 한국인 유학생이라 읽으면서 재밌었다.

 

 읽으면서 어쩌면 많은 여성들에게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부분이 비혼에 대한 강조였다. 물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여성들의 삶도 축하하고 응원해주었지만 선생의 조언이 독립적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결혼고려와 자아실현을 위한 비혼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남들처럼 결혼하고 아이까지 둘씩 낳아가며, 남이 누리는 행복 다 누리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느냐?" 이이효재는 제자들에게 혼인하지 말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매진하라고 말하곤 했다. p.159 " 요즘에야 이런 발언을 더 유하게 받아들이지만 50년대 70년대에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진보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비혼과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을만큼 많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비혼을 선택하는 일은 혼자만의 결정이 되기 어렵다는 것만으로도 선생이 얼마나 앞서나가 생각하고 활동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마음의 짐을 좀 달래주는 것이 " "내가 가진 것이 남아서,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서 남에게 줄 수 있는 상태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지금 이 상태에서 있는 대로 나누고 있노라면 그도 가지고, 배우고, 또한 나누고 있는 동안에 나도 자라는 것이다." 윤성렬 목사가 자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말이었다. p.197 " 라는 내용이었다. 꼭 결사적 비혼이 아니면 또 어떤가, 삶에서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면 뜻을 실천하는 작은데서도 길은 열릴 것이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이이효재 선생에 대한 책이지만 독특하게도 윤정옥 교수에 대한 부분이 참 좋았다. 윤정옥 교수와 함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나오는데, 언제 어떻게 들어도 매번 분노스럽고 마음 아픈 일이라 천천히 헤아리듯이 읽게 된다. 또하나 감명 깊었던 것은 선생이 일흔을 훌쩍 넘겨서도 자신이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는 것이다. " '내가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구나. 이제 물러설 때가 온 게야.' p.240 " 스스로 은퇴를 결심한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은퇴 후 진해로 내려가서도 도서관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행동력이 돋보였다. 선한 영향력을 의미있게 쓰는데에 끝까지 삶을 바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껏 몰랐던 이이효재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실 그녀를 몰랐던 적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호주제 폐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처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회의 굵직한 문제들이 그녀와 함께 했다. 역사와 함께 새겨지지 않은 그녀의 이름이 이제 책으로 나와 기억될 수 있다는 점이 뜻깊었다. 표지에 "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가운데 단 한 명도 이이효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 는 다소 무거운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읽고나니 글 한 줄로는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책이 나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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